
데미언 라이스 밴드에서 노래하는 리사 해니건.
[매거진 Esc]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내가 리사 해니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건 재작년 11월이다. 그때, 데미언 라이스는 두번째 앨범 <9>를 발매하고 북미 지역을 시작으로 전세계 순회공연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택한 첫번째 공연지는 음악적으로 유서 깊은 샌프란시스코였는데, 그때 버클리에서 생활하던 나는 스트리트 매거진을 읽다가 그 소식을 알고 “음, 데미언 라이스 정도면 가볼 만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매주 유명한 밴드들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보니 “데미언 라이스 정도라면” 같은 탄식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셈이다.
그 공연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내 옆에 앉아 있던 백인 남녀였다. 여자는 술에 약간 취한 상태로 시종일관 나를 향해, 다른 청중들을 향해, 무대를 향해 웃음을 터뜨리면서 무슨 얘기인가를 중얼거렸고, 그럴 때마다 남자는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고 십여 분이 지나자, 여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내게 실례한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앉아 있던 남자도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역시 내게 실례한다고 말한 뒤, 빠져나갔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세 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점차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소설가란 작자는 모든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쪽으로만 치닫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이야기가 되니까. “그 커플은 오늘로 끝이리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데이미언 라이스의 노래만 나오면 여자는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그런저런 상념에 젖어서 나는 공연을 지켜봤다.
거기 무대 한쪽 구석에 리사 해니건이 앉아 있었다. 그날, 데미언 라이스의 공연은 일렉트릭 기타를 주로 사용해서 꽤나 시끄러웠는데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앉아 있던 자세를 설명해야겠는데, 그게 좀 힘들다. 치마를 넓게 펼치고, 아마도 무릎을 꿇은 채, 똑바로 앉아서 객석만 바라보다가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면 조용히 일어나 자기 파트만 부르고는 다시 무대에 앉았다. 앉아 있다가 힘들면 비스듬히 누웠다. 그렇게 공연이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마치 무대장식처럼.
그녀는 감정이라는 걸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사이보그 같은 게 아니라, 식물 같은 느낌이었다. 데미언 라이스는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그리고 그 노래들 대부분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그 희로애락의 표면을 가만히 떠다녔다. 쓸쓸했던 나의 감정은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네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벌어질 거야. 웃고 행복하다가 또 괴롭고 슬플 거야. 하지만 결국 ‘나’라는 건 거기 가만히 앉아 있어. 그녀는 그런 말을 내게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익히 알려진 대로 니나 시몬의 “남편이 되어줘(Be My Husband)”를 불렀다. 노랫말을 “아내가 되어줘(Be My Wife)”로 바꿔서. 그 이상하고도 무표정한 구혼가 덕분에 나는 쓸쓸했던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듯한 그 노랫말과 표정 덕분에.
최근 리사 해니건의 팬사이트에는 “리사는 드디어 자유롭다(Lisa is finally free)!!!”라는 글이 올랐다. 내용인 즉슨 지난해 데미언 라이스의 밴드에서 나온 리사가 2008년 발매를 목표로 솔로 1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리사는 드디어 자유롭다. 2008년에 나는 많은 것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리사의 솔로 1집은 학수고대 목록 1위에 오르게 됐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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