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훈아는 힘센 수컷이 되기를 열망하면서 질시하는 보통 남자들의 환상이 투영된 존재이다.
[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남자는 언제 강한 모습을 보이는가. 또는 강한 척하는가. 첫번째 가능성, 내부의 에너지가 펄펄 끓어넘쳐 주체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두번째 가능성, 콤플렉스나 상처 같은 내면의 약한 부분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을 때.
2008년 벽두, 대한민국 호사가들을 뜨겁게 흥분시킨 그 남자가 둘 중에 어떤 타입인지 나는 알고 있지 못하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그를 둘러싼 풍문이 퍽 괴이쩍다 생각했을 뿐. 그 풍문은 어딘가에서 익히 들어온 내용을 살짝 비튼 구성, 실체의 직접 목격자가 아무도 없다는 점 등에서 일종의 도시 괴담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 괴담이 왜 하필 나훈아라는 사내에게 덮어씌워졌는가가 궁금했는데, 기자회견을 통해 의문이 스르르 풀렸다. (와이티엔(YTN)이 왜 그 기자회견을 생중계할 결심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당최 풀리지 않는다)
나이가 믿기지 않도록 잘 관리된 탄탄한 몸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블랙수트 ‘빨’, 좌중을 완벽히 장악하는 카리스마, 입장과 퇴장까지 꼼꼼히 계산했음이 분명한 쇼맨십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은 가히 놀라웠다. 그를 표현할 단 하나의 단어가 필요하다면 나는 ‘수컷’을 고르겠다. 힘센 수컷이 되기를 열망하는 동시에, 저보다 힘센 수컷을 선망하고 두려워하며 질시하는 이 세상 보통 남자들의 환상이 투영된 존재가 나훈아인 것이다. 그 소문의 핵심이 페니스와 관련되어 있다는 건 너무 노골적이라 차라리 슬픈 판타지다.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이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긴 한 개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든 본인이 그걸 남들 앞에서 밝힐 의무는 전혀 없고, 남들도 그걸 알고 싶어 할 권리란 절대로 없는 법이거늘!) 새삼 확인된 것은 나훈아가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남자라는 것. 그는 이 루머의 주범으로 언론을 지목하고 준열히 꾸짖었다. 회견장에 모여든 새파란 기자들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얼어버렸으며, 이 광경을 지켜보던 대중들은 ‘고놈들, 까불더니 꼴좋네’라고 통쾌해했다. 수군대고 낄낄댔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이. 그리고 남자는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노래들이다. ‘이미 와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 이미 때늦은 이별인데 미련은 두지 말아요.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속절없이 흔들리는 친구에게 이것 말고 무슨 노래를 선물하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 자학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고 싶을 때 방문을 걸어 잠그고 부르고픈 노래도 있다.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발이라도 있으면은 님 찾아갈 텐데, 손이라도 있으면은 님 부를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게 없네.’
인생의 본질을 모르는 자는 쓸 수 없는 가사가 아닌가. 분명한 느낌표인 줄 알았는데, 곱씹을수록 그는 오색의 거대한 물음표다.
정이현 소설가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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