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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메뉴들은 어디 갔나

등록 2008-05-28 21:23

스페인식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는 노른자 구멍이 포인트. 이명석
스페인식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는 노른자 구멍이 포인트. 이명석
[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30년 전의 일이다. 일요일마다 카페에 가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소년이 있었다. 만화 <사바스 카페> 같은 판타지는 접어주시기 바란다. 유럽 어느 도시의 귀족 자제가 아니라, 경상도 읍내 시장의 꾀죄죄한 꼬맹이였던 내 이야기다. 그 시절 대구의 서문시장에 큰 가게를 두고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는 도매상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아침나절의 짧은 일을 마치면 나를 데리고 다방에 가곤 했던 거다. 집에 두고 온 내 또래의 아들을 생각하며.

아주머니는 어른 대접을 하며 내게 메뉴를 고르라고 했지만,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내 앞엔 가장 비싼 음료인 쌍화차가 나왔는데, 내 눈은 아주머니의 커피잔에 들어가 있는 달걀을 향하고 있었다. 도시의 마나님을 따라간다는 부푼 마음에 시래깃국 밥상을 물리치고 나왔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커피잔 받침에 반쯤 익은 계란을 담아 주었다.

커피의 각성과 달걀의 영양을 합치면 훌륭한 아침이 될 거라는 기대는 우리 다방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헝가리에서는 커피에 날달걀과 그 껍질, 소금을 넣고 끓인 뒤 액체만을 마신다. 독일의 아이에르 카페는 커피에 달걀과 우유를 넣은 뒤 힘껏 저어 거품을 만든 뒤 들이켜고, 지중해와 남미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달걀과 커피를 한 컵 속에서 뒤섞은 맛은 결코 달갑지 않다. 그러나 간편한 아침 테이블에 이 둘이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한때 나는 서울의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최고의 모닝 세트’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인사동 프레이저 스위트의 1층 커피 빈이나 대학로 파리크라상 2층의 카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3천원 남짓한 돈으로 커피와 달걀 요리, 샐러드와 작은 빵까지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커피는 리필로 한잔 더.

<섹스 앤 더 시티>가 뉴요커의 브런치 열풍을 데리고 올 즈음, 이들 착한 메뉴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재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몰라도, 호사스러운 치장과 함께 가벼운 지갑으로는 만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브런치는 아무래도 빅 런치를 줄인 말인가?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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