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짱구는 못말려-액션가면 대 그래그래마왕〉(1993)
[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요즘 주말 아침은 <짱구는 못말려-극장판>과 함께 시작된다. 채널 씨지브이(CG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극장판을 1기부터 방영하기 때문이다. 방영 채널이라야 네댓 개가 전부인 4000원짜리 빈곤층용 케이블 채널 옵션을 보는 탓에 투니버스나 챔프는 언감생심이었는데 <짱구는 못말려>를, 그것도 극장판을 볼 수 있다니 ‘태풍을 부르는 신짱의 두근두근, 영광의 엉덩이 춤’이라고 이름붙이고 싶은 상황이다.
나에게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애증이 있다…, 고 하면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광들이 노트와 펜을 들고 이 말에 쫑긋 귀를 세울지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 팬과 영화 평론가들과 철학자들까지 나서 열광한 <공각기동대>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보면서 졸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모두 위대하다고 격찬한 작품을 보며 졸다가 무안해진 나는 극장을 나오면서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잘났다, 정말!’
하지만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전교 1등이나 전교회장같은 앞의 작품들 말고도 전교 500등 같은 <짱구는 못말려> 같은 작품들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짱구는 못말려>의 상상력은 전교 500등의 상상력이다. 여기에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묵시록적 예언도 없고, 운명과 싸우는 인간의 고독 따위도 없다. 다만 수영복을 입은 ‘그래그래 마왕’(1편 <액션가면 대 그래그래 마왕>, 원제 <액션가면 대 하이구레 마왕>)이 있을 뿐이다!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은 전교 1등만의 것은 아니다. 짱구와 가족들은 거의 매편 위기에 처한 지구나 사람들을 구해낸다. 위기의 ‘간지’가 앞서 엘리트 애니메이션과 조금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지구를 지배하려는 그래그래 마왕의 병사들은 사람들을 무력화는 데 레이저 광선을 쏜다. 그 광선을 맞은 사람은 갑자기 수영복 차림(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은 원피스 수영복!)으로 변신해 정신을 잃고서는 민망한 복장보다 더 민망한 브이자 동작을 취하며 ‘그래그래! 그래그래!’를 주문처럼 외운다. 나미리 선생님도, 인상 험악한 두목님, 아니 유치원 교장 선생님도, 짱구의 아빠도 같은 복장 같은 포즈로 ‘그래그래!’를 외친다.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군무도, 이보다 웃길 수는 없다. 물론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잠을 잔, 나 같은 사람도 있듯이 이 장면을 보면서 ‘저게 뭐야’할 사람도 있을 거다.
저거 뭐, 아무 것도 아니다. 쫄수영복이나 허접한 동작에 특별한 비밀이나 거창한 의미가 숨어있을 리 없다. 다만 웃길 뿐이다. 요즘 <멋지다 마사루>도 챔프에서 방영을 시작했지만(보고싶다 ㅠㅠ) 가끔 일본 코미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노라면 순도 100%의 웃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을 통한 감동이나 풍자 등 웃음을 어떤 도구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웃음 그 자체만을 위한 유희적인 농담이나 개그. 왜 웃냐면 그냥 웃지요라 말할 것밖에 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그런 웃음 말이다.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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