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만 살짝 가리면…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내가 열정이 부족했던 탓이거나 아니면 아무도 그것을 본 적이 없었거나, 혹은 국가기밀 대상이었던 탓일 테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여의도의 국회 의사당에 봉긋이 솟아 있는 돔 말이다. 그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돔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짜 소문대로 나라의 중대한 위기 때 뚜껑이 열리며 태권브이가 출동하는 것일까? 주변의 사람들도 잘 몰랐다. 국회 본회의장 모습이나 외관은 질리도록 봤는데, 반면 어느 매체를 통해서도 국회의 돔 내부 모습을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의 인터넷 검색 끝에 누군가가 찍어 올려놓은 돔 안의 모습을 보았다. 국회의 로비에서 위쪽으로 올려다보면 은은하게 빛이 퍼져 내려오는 오목한 돔의 안쪽이 보인다고 했다. 혹시 국회 본회의장의 천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기대는 날아가 버렸다.
국회의사당은 예전에 김포공항이 대한민국의 관문이었던 시절부터, 인천공항이 그 구실을 대신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입국해 서울의 도심까지 향하는 지루한 길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우리의 상징(길표지) 구실을 한다. 너무 오래 보아 왔던 이유로 자연스럽게 느껴지다가도, 어쩐지 좀 어색하게 생겼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건축적으로 봤을 때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조금 슬픈 희극에서 비롯되었다. 원래는 열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건물이었는데 더욱 강한 권위를 표현하고 싶었던 정치가들의 압력으로 돔이 생뚱맞게 앉혀진 것이다. 완성된 모형 위에 돔을 깎아 얹고, 마무리된 도면 안에 동그라미를 그어 넣어야 했던 건축가의 애환이 느껴진다.
정치적인 의미를 젖혀놓고서라도 이런 기형적인 건축물이 우리의 얼굴이 된다는 사실이 불만인 분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타지에서 귀국하여 매번 마주치게 되는 이 부조화의 모습이 이젠 제법 정겹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곳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이 많은 세상. 지극히 절제된 형태의 기존 의사당 설계안 위에 얹힌 돔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가장 잘 대변하는 구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텅 비어 있을 돔의 내부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치열하게 다투는 중일 것만 같다.
버스를 타고 의사당을 지날 때마다 나는 손가락 둘을 곧게 펴 돔의 모습을 살짝 가려 본다. 돔이 사라지면 완전히 새로운 건물이 탄생한다. 어느 것이 더 멋있느냐는 문제는 뒤로 미루고서라도, 그 순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이 어쩐지 무척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건축가·오기사 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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