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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속여보고 싶다”

등록 2008-09-17 19:15수정 2008-09-19 14:52

한없이 건방지고 거만한 캐릭터로 자신을 확장시켜온 유세윤의 로망
한없이 건방지고 거만한 캐릭터로 자신을 확장시켜온 유세윤의 로망
[매거진 esc] 웃음의 강자들
한없이 건방지고 거만한 캐릭터로 자신을 확장시켜온 유세윤의 로망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17세기의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21세기에이 대사의 주인을 찾는다면 고뇌에 찬 왕이 아니라 우리를 웃기는 한 인물이다. 삐딱한 눈초리로 “당신은 욕심쟁이, 우훗훗!” 겁없이 시건방을 떠는 건방진 도사, 단 한 명밖에 없는 열혈 팬을 앞두고 “여러분 다같이~” 외치는 자기도취의 극한 로커 닥터 피쉬는 매주 우리 곁에 와서 배꼽을 간질이지만 유세윤(28)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과연… 있을까?

수많은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쇼에 나와서 자신의 못된 성격, 못난 실수들을 기탄없이 털어놓으며 사람들을 웃기는 요즘 유세윤의 존재는 유별나다. <개그콘서트>의 복학생에서 시작해, ‘사랑의 카운셀러’,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의 건방진 도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자신보다 캐릭터를 드러내왔고, 때로 그 캐릭터는 토크쇼나 라디오까지 무한확장되면서 건방진 게 유세윤인지, 유세윤이 로커인지 보는 이들을 헷갈리게 만들곤 했다. 이렇게 우리가 헷갈려 할 때 유세윤은 속으로 씩 웃으며 “그것 봐, 속았지롱, 이 사람아~!’ 즐거워할 것만 같다. 추석을 앞둔 초가을 유세윤을 만났다.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수줍어하는 개그맨들과 달리 그는 마치 화보집이라도 찍는 아이돌인 양 폼을 잡으며 물 만난 고기처럼 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궁금해졌다. 도대체 유세윤, 넌 누구냐?


개그맨 유세윤
개그맨 유세윤
닥터피쉬의 노래들을 음반작업하고 있다고 들었다. 잘되고 있나?

녹음은 다 끝났고 9월 말쯤 나온다. 12곡 들어가는데 2곡은 신곡이다. 그중 하나의 가제는 ‘니 곁에 얼씬도 안 할게’다. 곡들이 짧아서 컬러링이나 벨소리 다운로드 길이로는 딱이다. 그걸 노렸다.(웃음)


아이디어는 없어도 잘 받아는 먹는다?

닥터피쉬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이자 캐릭터이면서 다른 프로그램이나 현실로도 확장되고 있다. 출연은 안 했지만 서태지로부터 이티피(ETP)페스티벌 초대도 받지 않았나?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예전부터 가수나 밴드 같은 걸 해보고 싶었다. 특별히 악기를 다루는 건 아니었지만, 왜 싸움 못하는 애들도 멋지게 싸움해보고 싶다는 꿈같은 걸 꾸지 않나. 개그맨으로 무대가 주어지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본 거다. <뮤직뱅크>나 <러브레터> 같은 데는 못 나가지만 가수가 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거지.

닥터피쉬의 노래들은 일명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인데 가사는 어떻게 만드나?

가수나 밴드처럼 노래 불러보고 음 맞춰 보면서 계속 작사한다.(웃음) 그런데 아이디어는 주로 종훈씨(이종훈)가 낸다. 나는 옛날부터 아이디어 없기로 유명하다. 선배들이 짜놓으면 잘 받아먹는 애로도 익히 알려져 있고.

‘봉숭아 학당’의 복학생이나 ‘사랑의 카운셀러’ 같은 대박이 다 받아먹은 코너라구?

처음 콘셉트는 잘 잡는 편인데 웃음 포인트를 잘 못 짠다. 그나마 남이 하면 어색한데 내가 하면 웃긴 것들이 몇 개 있어서 받아먹은 걸 잘 살리는 애라는 말을 듣는다. 예를 들어 느끼하게 노래를 부르는 거라든지. 사실 ‘사랑의 카운셀러’도 개그라기보다는 상황극 같은 거잖나. 누구나 공감하는 상황의 인물들 흉내를 잘 내는 것뿐이지. 흐흐.

서태지의 컴백 다큐 출연이 화제가 됐다. 서태지라는, 거의 인격화를 벗어난 인물을 만나면 누구든지 주눅들 거 같은데, 초지일관한 건방짐의 내공이 대단했다.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떨렸지?

아니다. 욕심이 없어서 그런가? 여기서 대박 쳐야지 그런 마음을 가지면 주눅이 들 텐데 그런 게 별로 없다. 일종의 깨달음인데, 나는 욕심을 가지거나 승부욕을 불태우면 잔뜩 긴장만 되고 오히려 더 꼬이더라. 그래서 잘해야지, 웃겨야지라는 생각보다 제작진이 이상하게 안 볼 정도만 해야지,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라는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래도 처음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안 맞는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고 좀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선배들도 욕심 가져라, 쇼 나가면 눈에 띄게 오버해라, 그렇게 격려를 했고, 제작진에서는 세윤씨 믿어요, 한번 터뜨려 주세요, 주문하는데 완전 부담이었지. 개그맨으로서의 사명을 갖고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 게 오히려 유쾌해야 할 개그맨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버라이어티쇼에 나가면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사생활이 그렇게 상품화되는 게 너무나 싫었다. 가식적인 거 같고, 연예인이 이래서 싫다는 딜레마 아닌 딜레마를 겪었다.


개그맨 유세윤
개그맨 유세윤

“메이저가 돼라”는 조언에 스트레스

이제는 적응이 좀 됐나?

편해진 것까지는 아니고 새학기를 맞았을 때의 어색함이 사라지는구나 정도? 그러면서 이제 이 학년에 끝나면 또 새학기가 오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무릎팍 도사’의 건방진 도사도 처음에는 시청자들에게 오해를 받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었다고 하던데?

오해까지는 아니고 나 스스로 헷갈렸던 게 있었다. 그 캐릭터도 제작진에서 잡아준 걸 주워먹은 건데(웃음), 하면서 내가 진짜 건방진 건가? 건방진 게 웃긴 건가? 혼란을 겪었다. 보는 사람들도 쟤가 원래 건방진 애인가? 건방진 게 웃긴 건가? 그냥 막말하는 거 아냐?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 나란 사람을 알고 내 캐릭터를 보는 것 같다.

성공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뭔가?

좋은 점은 친구들 만나면 밥값, 술값 내고 내가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살 수 있는 거. 비싼 건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거. 하지만 잃은 게 더 많은 거 같다. 우선 유명세라는 게 내가 원하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점. 예를 들면 올여름에 해운대로 친구들과 놀러가면서 모텔에 방 잡았는데 주변에서는 격 떨어지게 왜 그러냐. 옷도 싸구려 입지 말고 잘 챙겨입으라고 그런 말을 듣는다. 나는 싸구려가 좋고 마이너 문화가 좋은데 주변에서는 메이저가 돼라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다.

보통 개그맨 하면 학창시절의 오락부장 ‘커리어’를 떼놓을 수 없는데 언젠가 오락부장 느낌이 싫다는 말을 했다. 뜻밖이었다.

내 스타일은 아닌데 오락부장을 하긴 했다. 애가 너무 튀어서.(웃음) 어릴 때는 웃긴다기보다 “아우, 저 미친 놈!” 이런 말을 많이 들었고 그걸 좋아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 지각했는데 선생님 앞에서 축 처진 목소리로 “어제 어머니 아버지와 대화를 했어요”로 시작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하고 혼자 연기를 한다. 절대 웃기는 상황이 아닌데 난 속으로 너무나 그걸 재밌어하고 그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미친 놈, 하는 거다.

캐릭터 연구를 그때부터 한 건가. 혼자 연기 연습하듯이?

외동아들인데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가 많아서 주로 혼자 놀았다. 거울 보면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거 흉내내기도 하고, 캠코더를 켜놓고 혼자 내 고민을 털어놓고 울기도 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걸 친구들이 보면서 제대로 미친 놈이라고 할 수밖에.

장동민·유상무와의 자취생활 에피소드


개그맨 유세윤
개그맨 유세윤
개그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개그맨 시험 볼 때까지도 개그맨을 할 줄은 몰랐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서 극작과에 들어가 연극동아리를 했는데 거기서 동민이형(장동민), 상무(유상무)를 만났다. 우리가 주로 웃기는 연극을 해서 같이 끼를 자랑해보자. 개그맨 시험 보면 한 번에 붙을 거 같다. 이런 마음으로 시험을 본 건데 똑 떨어진 거지. 그러고 나니까 세상이 우리 생각보다 넓은 데구나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더 시험을 봤다. 붙은 다음 무대에 올라가고 나서야 개그맨이 나한테 맞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시나리오 쓰고, 연기하고, 감독도 하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다 할 수 있으니까.

대학시절 옹달샘이라는 개그팀을 만들었던 장동민, 유상무와 진짜 재밌게 놀았을 것 같다.

너무 심하게 놀아서 다 비방용이라 방송에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셋이 자취를 같이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온 다음에 쓴 휴지를 칸칸이 이 친구들 앞에 펼쳐놓고 미술공부를 하기도 했고, 항상 내가 일찍 일어났는데 기상 알람으로 에로 비디오의 볼륨을 끝까지 틀어 깨웠다. 그리고 우리끼리도 맨날 쇼 프로그램 하듯이 게임을 하고 놀았는데, 후배들이 놀러오면 자리 정하는데도 <천생연분> 같은 게임을 하고, 동물 흉내내기 게임 같은 것도 했다. 예를 들어 임종을 눈앞에 둔 매미라든가, 성희롱 당한 개코원숭이라든가. 정말 희한한 거 하는데 또 꼭 맞춘다.(웃음)

셋 중 혼자 부쩍 바빠져서 다른 두 사람이 샘도 내겠다. 전에 유세윤이 자기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게 어디 나왔지?(큰 웃음) 사실 그게 아주 디테일한데, 셋이 같이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노란 불일 때 내가 성급하게 앞으로 나가다가 차에 치여서 내 피가 자기 얼굴에 튀는 그런 설정이었다.(웃음) 셋 다 이렇게 디테일이 강한데 스타일은 각자 다르다. 내가 좀 비꼬고 얄미운 편이라면 동민이 형은 독하고 약간 잔인한 면도 있고, 상무는 오락부장 스타일이다.

건방지고(건방진 도사), 거만한(닥터피쉬) 캐릭터로 주로 나오지만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하기도 했고, 방송에서도 문득 그런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원래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없는데 그래도 내가 즐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이게 비슷한 말인 것 같아도 아주 다르다. 누군가 잘해라, 너 잘할 수 있지? 그러면 대답 못 하겠는데 ‘무대에서 행복해?’라고 묻는다면 물론이지, 그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바로 대답할 수 있다.

<맨 온 더 문>의 앤디 카우프만이 역할모델


개그맨 유세윤
개그맨 유세윤
그럼 개그 무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

그보다 더 행복한 건 옹달샘이나 다른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난데없이 장난치고 놀 때. 사람들이 연예인인 줄 모르고 우리끼리 치는 장난을 황당하게 바라보거나 그러다가 막 웃는 거. 무명이었을 때나 조금 유명할 때까지는 길거리나 식당에서 이런 장난을 많이 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쉽다. 아주 많이.

역할모델이랄까?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 있나?

영화 <맨 온 더 문>에서 본 앤디 카우프만. 진짜 멋있다.

앤디 카우프만(실존했던 코미디언)은 천재였을지 모르지만 인정도 제대로 못 받고 결국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멋있다기엔 조금….

아니, 정말 반했다. 그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서 웃길 바라는 게 아니라 자기 구상대로 속길 바라고, 그렇게 속는 사람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원하는 게 그거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속고 그걸 보면서 내가 희열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렇게 즐겁고 싶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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