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선계곡의 단풍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짙다. 가장 춥고 험한 계곡이기 때문이다.
[매거진 esc] 한국관광공사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끌리는 여행 ⑦ - 패키지편
쉬엄쉬엄 1박2일로 딱! 칠선계곡, 뱀사골, 피아골 지리산 단풍 3종 세트
쉬엄쉬엄 1박2일로 딱! 칠선계곡, 뱀사골, 피아골 지리산 단풍 3종 세트
가을은 지리산의 속살부터 찾아온다. 높은 산일수록 험한 골짝일수록 단풍이 일찍 몰래 든다. 하지만 그런 산일수록 하루 이상 빠듯하게 힘들여 올라야 한다. 편하게 단풍을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본색은 등산로이지만 길의 초입은 산책길로 맞춤한 단풍 길을 느릿느릿 왕복하는 것이다. 정상 정복이 아니라 힘들면 쉬고 지치면 되돌아오는 방법을 택했다. 일곱 선녀가 목욕했다는 칠선계곡, 스님을 삼킨 이무기가 죽었다는 뱀사골, 전쟁의 살상으로 피가 흘렀다는 피아골 등 지리산 단풍 삼종 세트를 1박2일로 둘러봤다.
선녀탕부터 비선담까지 ‘칠선 단풍’ 하이라이트
경남 함양의 마천 칠선계곡은 험하기로 유명하다. 한라산을 빼곤 남한 최고봉인 지리산 천왕봉(1915m)의 북쪽 비탈을 곧장 쓸어 내려오는 물길이라 경사가 급하고 여름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다. 1970~80년대 히말라야 원정을 가는 등반대도 겨울 칠선계곡을 훈련장으로 택했다. 그런지라 등산로가 잘 다듬어진 2000년대에도 하루 길을 내주지 않는다. 총 길이 14km, 오르는 데만 7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계곡 하류 길은 나무 계단과 철제 다리로 잘 정비돼 초등학생을 동반한 가족도 한나절 산책을 즐길 수 있을 정도다. 추성리에서 비선담까지 3.9㎞다.
처음은 산촌마을을 굽이도는 흙길이다. 언덕배기에 걸린 길은 능선의 겹자락과 겹자락을 돌아 이어진다. 칠선계곡은 아래로 깊고 넓고, 천왕봉은 위로 우뚝하고 우람하다. 편한 흙길은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칠선계곡의 마지막 마을 두지터에서 끝난다. 여기서부터 선녀탕까지는 계곡을 굽어보며 이어지는 산사면 길이다. 가끔은 모난 바위 때문에 숨이 찰 것이다.
물소리가 커지면 이윽고 선녀탕이다. 선녀탕부터 비선담까지 500미터 계곡 산책길이 ‘칠선 단풍’의 하이라이트다.(사실 1.5km 상류 지점의 칠선폭포 즈음이 최고 백미로 꼽지만, 극기정신과 탐방예약이 필요하다) 선녀탕·옥녀탕·비선담 등 아주 전형적인 이름의 계곡 명소가 이어진다. 하지만 전설은 상당히 이색적이다. ‘선녀와 나무꾼’의 동물우화 버전인데, 들어보시길.
“칠선계곡의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역시!) 선녀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평소 칠선계곡 선녀들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곰은 (역시!) 선녀들의 옷을 훔쳤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은 날개가 없어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곰은 나무꾼처럼 선녀와 결혼할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큰 실수를 했다. 바로 선녀들의 옷가지를 나무에 걸어 숨겨 놓는다는 것이 이를 착각해 사향노루의 뿔에 걸어 두었던 것이다. 사향노루는 선녀에게 뿔에 걸린 옷을 가져다주었다. 선녀들은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에게 칠선계곡으로 집단 이주시켜 안전하게 살게 해 주고, 곰들은 인근 국골로 쫓아냈다”
노루의 도움으로 칠선녀는 사라졌지만 칠선계곡에는 선녀탕이 남아 있다. 선녀탕에는 붉은 단풍도 남아 있다. 파문에 어른거리기도 하고 낙엽이 떠다니기도 한다. 지리산 단풍의 절정인 11월초 이전의 계곡 색은 일 년 중 가장 다채롭다. 여름 자취가 남았고 가을의 절정이 베었으며 겨울의 전조가 예감되기 때문이다. 초록, 연노랑, 노랑, 주홍, 붉은 주홍, 고동 등 숲에는 세 철의 색이 교차한다. 나무계단과 출렁다리, 전망대가 조망을 도와준다. 선녀탕 바로 위 100여 평 남짓한 암반에 자리잡은 옥녀탕과 비선담까지 올라갔다가 서둘러 내려왔다. 가을은 지리산의 속살부터 찾아온다.
산이 붉고, 물이 붉고, 얼굴까지 붉어진다네
칠선계곡 다음은 뱀사골이다. 지리산의 북쪽 뒤태를 바라보며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갔다. 뱀사골은 남원 산내면 반선리 집단시설지구에서 화개재까지 12㎞의 완만한 물길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뱀이 죽은 골짜기라 뱀사골이다. 뱀사골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주지 스님으로 오는 사람마다 칠월칠석날 밤이면 사라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주지 스님들이 부처가 되어 승천했다고 믿었지만, 서산대사는 이를 의아하게 생각해 칠월칠석날 주지 스님의 장삼에 극약 주머니를 달았다. 이튿날 새벽 큰 우레가 치더니 큰 뱀이 송림사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서산대사와 마을 사람들이 따라 올라가니,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뱀소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뱀의 배를 갈라봤더니, 주지 스님이 죽어 있었다. 뱀이 극약을 먹고 죽은 것이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정말로 많았는지, 뱀사골에는 뱀이 많이 잡히는 골짜기로 유명했고 한동안 뱀탕집도 지천이었다. 지금은 산채비빔밥집이 많은 집단시설지구에서 골짜기를 따라 자연탐방로가 이어진다. 화장실이 설치된 와운교까지 2km, 40분이 걸린다. 칠선계곡이 남성적이라면 뱀사골은 여성적이다. 석실과 정진암, 요룡대, 탁룡소, 뱀소 등 단풍 명소는 거칠지 않고 아기자기하다. 까치떡갈나무, 졸참나무, 느릅나무, 산딸나무, 함박꽃나무, 그리고 감나무 잎도 물들었다. 뱀사골 숲은 수종이 다양하다. 나무마다 안내판이 달렸으니, 나무 공부도 하길.
전북에서 전남으로 넘어갔다. 달궁 마을의 할머니는 곶감을 꿰고 젊은 청년은 마당의 낙엽을 쓴다. 성삼재를 넘으면 화엄사 지나 피아골이다. 여유가 있다면 성삼재에서 왕복 두 시간을 잡아 노고단에 갔다 오시길. 노고단에서는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구례 토지면의 피아골은 지리산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단풍 명소다. 특히 삼홍소는 지리산 단풍의 대표 선수격이다. 산의 단풍이 붉고(산홍), 계곡물에 비친 단풍이 붉고(수홍), 단풍숲 속에 빠진 사람의 얼굴도 붉어진다(인홍) 하여 삼홍소다. 하지만 10월 중순 산은 붉으나 물은 붉지 않았다. 지리산 북사면인 칠선계곡이나 뱀사골에 비해 나무가 추위를 덜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향의 피아골은 활엽수가 대부분이라 전체가 붉은 단색이 된다. 기상청은 지리산 단풍의 절정기를 11월 초로 보고 있다.
가뭄에 고운 빛 금방 바랠까 걱정
올해 남부지방의 가뭄이 심해 계곡엔 물이 많지 않다. 피아골 직전 마을 사람들은 “올해는 큰 태풍이 한 번도 안 불어 지하수를 쓰고 있다”며 걱정했다. 단풍의 빛깔에도 적당한 비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싱싱한 색깔을 잃고 금방 말라 버린다.
삼홍소에서 내려오니 해가 저물었다. 소박한 정원 같은 연곡사를 둘러보며 발을 풀었다. 일주문 옆에는 ‘산방다원’이라는 소담한 찻집이 있다. 공현식(37)씨가 작설, 송이, 돌배, 모과, 오미자차 등을 내놓는다. 화엄사에서 차를 배운 어머니에게서 차를 익혔다고 한다. 차를 마시며 사위는 볕을 바라봤다. 비가 오면 단풍 빛이 더 예쁠 것이다.
지리산=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정상 정복 욕심을 버리고 단풍에 빠져보라.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는 뱀사골.
노루의 도움으로 칠선녀는 사라졌지만 칠선계곡에는 선녀탕이 남아 있다. 선녀탕에는 붉은 단풍도 남아 있다. 파문에 어른거리기도 하고 낙엽이 떠다니기도 한다. 지리산 단풍의 절정인 11월초 이전의 계곡 색은 일 년 중 가장 다채롭다. 여름 자취가 남았고 가을의 절정이 베었으며 겨울의 전조가 예감되기 때문이다. 초록, 연노랑, 노랑, 주홍, 붉은 주홍, 고동 등 숲에는 세 철의 색이 교차한다. 나무계단과 출렁다리, 전망대가 조망을 도와준다. 선녀탕 바로 위 100여 평 남짓한 암반에 자리잡은 옥녀탕과 비선담까지 올라갔다가 서둘러 내려왔다. 가을은 지리산의 속살부터 찾아온다.
노고단 올라가는 길의 달궁 마을. 곶감을 걸던 할머니가 감을 건네주었다.
구례에는 이미 가을이 익었다. 추수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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