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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맘 결심, 격려해 주세요

등록 2008-11-05 22:29수정 2008-11-09 12:03

전업맘 결심, 격려해 주세요
전업맘 결심, 격려해 주세요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알고 보면 누구나 우왕좌왕 필사적인 삶,
내가 사는 방식에 자신감을 가집시다

Q 저는 세살 된 딸이 있는 직장 9년차의 워킹맘입니다. 애 낳고는 근 2년간 육아에만 전념했구요, 그 뒤 다시 복귀해서 여태 다녔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힘들어하고 몸도 자주 아파 큰마음 먹고 회사를 연말까지만 다니기로 했습니다. 아이 곁에 있어 주고 싶어서요. 귀가가 매일 늦는 남편은 육아나 가사를 돕지 못하면서 제가 관두면 쏠쏠했던 목돈이 안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은근히 속 쓰려 하는 것 같고요. 주변 친구나 동료들은 ‘다시 일한 거 너무 아깝다’며 어떻게든 관두지 말라지만, 비단 아이 문제가 아니라도 저도 두루 다 돌보느라 힘드네요. 근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감당 못 해내는 취약성과 조금 항진된 교감신경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이들은 더 힘든 상황에서도 대충 잘 넘기면서 살던데 제가 너무 민감한 거죠. 한편,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일하다가 막상 집에 있으면 또 얼마나 머리 싸맬까 싶어요. 직장생활이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사회생활 안 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커리어에 대한 욕망이 넘치진 않았지만 제가 하던 일은 사랑했으니까요. 지금은 유모차 끌고 백화점 산책을 하는 엄마들이 부럽지만, 또 집에 있으면 직장생활의 그 살아있는 느낌이 부러울 겁니다. 어쨌거나 현재의 저는 이렇게 결정을 내렸고 나중에 후회한다 해도 지금으로선 상관없다, 싶습니다. 저 좀 격려해 주실래요?

A 한국의 여성 취업률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는 30대 초·중반에서 평균치를 확 끌어내렸기 때문입니다. 출산·육아 문제 때문이지요. 성질 급했던 제 경우 일찍이 그 문제를 의식하며 살았고, 덩달아 학교도 일찍 졸업한 탓에 늘 남들보다 시간을 벌어놓고 앞서가야 속이 풀렸습니다. 마스터플랜도 짰죠. 서른 전에는 과장, 출산 전에는 팀장을 달아야 하고(그래야 복귀해도 제자리 찾는다는 꼼수) 노산의 마지노선인 35살까지는 가열차게 맞벌이해서 돈 모은 뒤, 후다닥 임신 ‘프로젝트’ 돌입. 프로젝트니까 최단기간내 성공을 위해 용하다는 보약과 뜸, 불임클리닉 적극 추천받고요. 그뿐인가요, 행여나 몸 컨디션 때문에 회사를 못 다니면 그 손실을 대체하기 위한 부업 거리 사전 확보까지! 그런데요, 임신 부분부터 ‘삑사리’ 난 겁니다. 안 생겨요. 스케줄 완전 꼬여버려 어쩔 수 없이 일정 기간 ‘놀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업이요, 글쎄 지금 제 본업이 돼버렸지 뭡니까.

비어 보였던 그 시간들은 지나 보니 허송세월이 아니었습니다. 효율성 강박증 환자였던 저는 출산·육아가 지배하는 현실이 불가항력적일 수 있고 그럴 때는 그 불가피한 상황을 ‘꾹 삼키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면 새로운 발견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내 안에 중심이 제대로만 서 있다면, 잠시 항로가 흔들렸다고 해서 인생의 큰 방향이 뿌리째 흔들리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홀가분하면서도 내심 두렵죠? 사회의 촌스러운 슈퍼우먼 콤플렉스 부추기기나 육아·가사 분담을 안 하는 남편의 시무룩한 궤변 ‘내가 돈을 많이 못 벌어다 줘서 미안’(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버럭)은 잠시 제쳐 둡시다. 저는 무엇보다도 당신의 ‘나중에 후회한다 해도 지금으로선 상관없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자칫 도망가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고 난 그렇게 해야만 쓰겠다,는 말은 참 감정적이고 솔직해서 좋은 겁니다. ‘나중에 복귀하기 힘드니까’ ‘왜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을 희생해’라는 이성적인 결정은 현명할진 모르겠지만 무리해서 관철시키면 불행한 결정이 되거든요. 물론 나중에 정말 재취직하기 힘들 수도 있고 억울해할 수도 있지만 실은 후회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인과관계보단 개인의 캐릭터 문제! 겉보기엔 너무 성공했는데도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상황이 꼬였어도 희망 품는 애들이 있듯이. 정말이지, 현재에 충실했기에 얻은 미래의 후회는, 차라리 현재를 억누르고 미래에 후회하지 않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멋진 선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어떤 시대라도 여자들은 흔들리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 누가 뭐라든 난 이걸로 됐어’라고 자신의 선택에 항상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나 외의 모든 사람이 그리 보일진 몰라도, 알고 보면 다들 우왕좌왕, 부단히 필사적인데요, 돌이켜 보면 왜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 더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습니다. ‘그때 내가 저렇게 하면 어땠을까’라며 자신에게 주어졌던 옵션이라고 착각하는 또 하나의 인생을 제멋대로 상상하며 질투하는 거죠. 뭐랄까, 늘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지고 있다는 패배의식과 라이벌 의식을 가지는 겁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데! 분명히요, 내가 살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마찬가지로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을 거예요.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정신없이 바쁘던 회사원 시절, 하루는 주중에 휴가 받아 백화점 지하 슈퍼에 갔어요. 쫙 빼입고 꼬마들 끌고 찬거리 쇼핑하는 여자들 보고 ‘이 팔자 편한 여편네들은 과연 어떤 종자인가’ 하고 확 위화감 느꼈더랬죠. 한데 내가 그 ‘여편네’가 되고 알게 되었죠. 아이들 데리고 갈 수 있는 곳 참 마땅치 않고, 백화점이라는 곳이 그나마 애 딸린 아줌마한테 우호적인 곳이라는 걸, 또 그래야 삭아가는 외출복 계절에 한 번이라도 꺼내 입게 된다는 걸. 우리, 워킹맘과 전업맘으로 이등분되지 맙시다. 우린 나뉘면 서로가 불행해집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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