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강요 더 후져, ‘~이즘’은 스며들어야.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일 바빠” 사회 무관심한 남자친구 한심해
일본 지진, 정치비리, 명문대생 자살 소식, 그리고 여러 심란한 기사들에 붙은 악플들. 그것들에 심란해진 저는 문득 남자친구의 생각이 궁금했어요. 남자친구와 1년 넘게 사귀고도 이런 주제로 얘기한 적이 없었거든요. 데이트라고 해도 매일 영화 보고 밥 먹는 게 다여서요. 만나기로 한 날, 일 마치고 나온 남자친구에게 간접적으로 뉴스와 신문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바빠서 볼 틈이 없대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그 사안들에 대한 제 생각을 얘기했죠. 빗나간 애국심과 이 나라의 불투명한 미래와 학벌주의 등등에 대해서요.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말을 끊으며 듣기 싫어하는 내색을 하더라고요. 전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본인도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는 그저 심각해진 분위기 풀려고만 하고 요새 회사일로 스트레스 받아 이런 얘기까지 듣기 괴로웠다느니 하면서 싫어한 내색에 대해 변명하는 거예요. 근데 그건 그저 듣기 싫은 사람의 반응이라 참 실망했어요.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친구와는 무거운 얘기 하면 안 되고 항상 장난치며 가벼운 얘기만 해야 하나요?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나요? 한편으로는 그간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했을 때, 동시대인으로서 아픔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짧은 안타까움만 느끼고 지나친 제가 한심했어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저만의 온전한 생각과 통찰을 가질 수 있을까요.
A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고 자신의 ‘먹고사니즘’에만 몰두하는 남자친구가 후져 보인다고요. 그래도 그의 입장에선 여자친구에게 ‘넌 나부터 챙겨라’ 싶을 겁니다. 또한 여자친구에게 시험받는 느낌과 더불어 사상적으로 안 맞을까 봐 혹은 자신이 아무 생각 없는 게 들통날까 봐 두려운 거겠죠. 문득 대학 시절 “넌 정치외교학과 학생이 너무 의식이 없어. 더 고민을 해야 해”라며 과방에서 윽박지르던 운동권 선배가 생각나는군요. 선배는 단지 자신의 고뇌와 이상향을 사랑스런 후배와 공유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자기 자신 하나도 감당을 못하면서 남의 행복에 앞장서겠다는 식이 그저 오만해 보였어요.
상대에게 좋은 것, 필요할 만한 것은 상대가 그렇게 납득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구속과 간섭일 뿐입니다. 좋은 취지를 앞세워 상대의 죄의식을 무의식중에 강요하는 꼴이지요. 영향을 주려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좌절하고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불쾌하고….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이런 식의 민망한 경우가 생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대개 그 결정적 차이는 그 선의를 전달하는 자의 ‘뜬금없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황하다가 갑자기 열혈 교인이 되어 그 은혜로움을 주변에 전도하고 싶어 미칠 때, 다단계 사업에 손을 대고 억만장자의 꿈에 몰입해 있을 때, 평생 혼자 살 것처럼 그러더니 덜컥 결혼하곤 신혼의 행복에 겨워 주변에 어서 결혼하라고 재촉할 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새로운 발견에 스스로 ‘겨워진’ 그들을 봅니다. 그들은 그 넘치는 자아도취의 기분을 참거나 견뎌내기 힘들어 가까이 있는 사람을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죠. 선의는 그래서 무례함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멋지고 정의로운 생각, 혹은 많은 사람들이 찬동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두루두루 함께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양심상의 동조나 소속감에 대한 욕구일 수가 있죠. 하지만 내가 남자친구와 공유할 만큼의 설득력을 지니려면 그 어떤 생각들이, 혹은 어떤 ‘이즘(주의)’이 나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개인적으로 그와 관련한 ‘사무치는’ 경험이 있을 때 더 생각은 강하고 깊어지지요. 글로 연애를 배우는 게 아니듯, 내가 어떤 부조리나 부당함을 직접 당하거나 곁에서 목격했을 때 더 간절하게 그 문제를 바라보며 ‘그렇게 해야겠다’ 혹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이 하나의 확고한 ‘신념’이 되어 내 일상의 삶과 주변인에게 자연스레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 우리는 물리적으로 체력적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에 하나하나 분노하고 대처할 순 없습니다. 몇 가지에 압축, 집중해야지요. 안 그러면 제스처만 취하다 말지요.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쉬운 말 일부러 어려운 단어 써가며 어렵게 하는 사람, 그럴싸한 ‘거대한’ 단어들로 선동하는 사람, 평소 말하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에게 홀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서두르지 말아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정의로워 뵈는 큰 목소리들 사이에서 주눅들지 말아요. ‘난 아는 게 너무 없어. 나약하고 무지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며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지 말고 최소한 나에게 의미 있는 가치와 신념이 뭔지를 알아낸 다음 그 생각들만이라도 제대로 품으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저는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일단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다른 나머지 어렵고 멀어 보이는 것들은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마음먹어도 전 괜찮다고 봅니다. 사실 이 세상엔 나중이 돼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들도 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저도 그동안 개인적으로 ‘사무친’ 이야기들만 부단히 질리지도 않는지, 일관되게 피력해 왔던 것 같네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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