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싸움의 기술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 초미의 관심사인 영화 시사회도 물리치고 감독들의 작업실 공간인 상암동 디렉터스 존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감독님들은 모두 초미의 관심사인 그 영화를 보러 가서 약간 썰렁했다. 내가 준비하는 프로젝트의 감독님은 부스스 일어난다. 마침 나도 저녁을 안 먹은 터라 그녀가 사온 편의점 도시락 하나를 나눠서 먹었다. 비 오는 봄밤 편의점 도시락을 나눠 먹는 우리들.
최근에 나온 만화 <심야식당> 3권을 보면 늘 한밤에 얼굴에 상처투성이인 부부가 식당에 들러 간부추볶음을 하나 시켜 나눠 먹는다. 반반씩. 그리고 맥주 한 병. 둘은 점점 얼굴의 상처가 심해지더니 급기야 깁스한 채로 오게 되고 그러더니 어느날 여자가 사라지고 남자만 혼자 온다. 그녀는 연하인 남자의 바람기를 못 참고 ‘사랑은 부딪쳐서 만들어 가는 법, 그래서 서로 힘들게 확인하는 거다’라며 늘 둘이 싸운다고 하지만 결국 서로의 폭력에 지쳐서 여자가 오히려 바람이 나 도망간 거다. 그리고 혼자서 오게 된 남자. 간부추볶음과 맥주를 시켜 놓고는 “혼자 먹기엔 너무 많군”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그는 영양실조로 입원하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그녀는 돌아온다.
봄밤 비 오는데 우리 둘은 준비하는 영화 캐릭터 가지고 밤새 싸웠다. “네가 쓰는 그녀는 너무 착하단 말이야.” 그러면서 이 만화를 보여주는 나의 심보란. 감독은 읽다가 덮는다. “술 마시고 싶어서 더는 못 보겠어요.” 우리의 설전은 여기서 끝나고 탕비실의 냉장고에 있는, 누구 것인지 모를 어떤 감독님의 맥주를 훔쳐 마셨다. 싸우고 화해하고 이런 것도 사랑 또는 호의적 관계에서나 가능하지 어디 싸움이란 게 나이 들면서 얼마나 있겠는가. 그만큼 깊은 관계조차 맺기도 귀찮아 거짓 웃음만 흘리고 다니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에서 두 남녀는 참으로 정겨워 보였다. 염장 봄밤이다.
김정영 오퍼스 픽쳐스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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