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에스케이로부터 한 회에 7점을 도둑맞은 3회 초, 한화는 선발투수 정민철을 내리고 마정길을 마운드에 올렸다. 에엥, 또 마정길? 이번주만 벌써 네 번째 등판 아닌가. 아무리 리그를 대표하는 노예 투수라지만 2주 연속 네 경기 출장이라. 측은지심에 혀를 끌끌대던 차, 스케줄러가 눈에 들어온다. 남의 일이 아니군. 이번주에 내가 마감해야 할 원고도 정확히 네 개다. 이입된 감정이 북받친다. 힘내라 마정길.
1년 전만 해도 나는 글쟁이로서 선발투수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주 1~2회의 등판 로테이션만 소화하면 되는 선발들처럼,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마감만 충실하게 막으면 되는 시절이었다. 마감이 아닌 때는 충전할 시간도 충분했고 심지어 마감이 닥쳐서도 체력 안배가 가능했다. 써야 할 기사의 양이 많아도 모든 문장들에 전력투구할 필요는 없었다. 안타 좀 얻어맞고 심지어 2~3점 내줘도 7회 정도만 잘 버텨주면 선발투수의 사명은 다하는 것처럼. 그러다 전업 자유기고가라는 이름의 불펜으로 내려온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위기가 닥치면 1주일에 몇 번이라도 불려나가는 구원투수마냥, 많으면 한 달에 10차례도 넘는 마감과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마감 하나하나가 승부처다. 굳이 원고료를 주고 쓰는 객원 필자인 만큼 데스크에서는 독자를 유혹하는 강속구를 원하기 마련.
충전할 시간과 휴식의 여유. 글 하나라도 더 써서 먹고살아야 하는 자유기고가에게는 배부른 이야기다. 삼성의 국민노예 정현욱은 다행히도 열흘 동안 푹 쉬고 올라왔다지만 글쟁이에게는 2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등판의 기회를 잃으면 그것으로 아웃. 그러고 보면 시즌중이라도 언제든지 방출될 수 있는 용병 선수의 운명과 더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더그아웃에서 대기하고 있는 외국인 마무리 투수의 긴장한 눈매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어이, 힘내라구 토마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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