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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을 놓치고서야 학부형의 마음을 알다

등록 2010-04-07 22:29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겨우내 다짐했었다. 올 시즌 개막전은 기필코 가리라고. 지난 시즌의 마지막이 썩 좋지 않았던 탓에 어느 해보다도 여파가 컸고, 그만큼 스토브리그 기간의 허기도 극심했던 까닭이다. 마치 군복무중인 병사가 휴가 나가서 먹을 온갖 사제음식에 대한 열망을 키우듯, 개막전 관람을 위한 현실적인 계획들을 대략 한 달 전부터 세우기 시작했다. 일 스케줄도 개막 주간을 피해 조정했으니, 이제 예매전쟁에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준비 끝.

허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개막전에 가지 못했다. 불과 1주일여를 앞두고 고양이 맡길 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기를 보려면 고향엘 다녀와야 하는데 오전에 내려갔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개막전만 보고 그날 바로 올라올 순 없지 않은가. 본전치기를 위해 다음날 있을 홈 2연전까지만 본다고 해도 최소 1박2일. 내가 설익은 봄바람 살랑거리는 관중석에서 환호성을 질러대는 사이(혹은 고래고래 쌍욕을 내뱉는 사이) 우리 고양이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아빠를 불러대며 온 집안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다른 이들은 밥이랑 물 잔뜩 쌓아놓고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더라만, 얘를 들이고 난 직후부터 프리랜서가 되어 줄곧 집에서만 일해 온 터라, 만 하루 이상 혼자 둘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이 일을 두고 책임감 운운한다면, 미혼인 주제에 참으로 가소로운 노릇일 것이다. 20대에 결혼해서 이미 학부형이 된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이젠 가끔씩 그 녀석들을 만나더라도 공통의 주제를 찾기가 힘들어진 지 오래. 한때는 그들에게 즐기며 살라고 되지 않은 참견도 해댔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동안 내 친구들은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꽃놀이를, 야구 경기들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고양이 때문에 개막전 한 번 못 간 것은 댈 일도 아닐 터이다. 그러고 보니 이건 너무나 서글픈 위안이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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