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얼마 전 대판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퇴근길 남편에게 “아이스크림 좀 사오라”고 부탁을 하면서 “나뚜루, 하겐다즈는 너무 비싸니까 싼 걸로 사오라”고 당부했죠. 까만 비닐봉투 안에는 아이스크림 네 개와 1000원짜리 넉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폐는 뭔가 했더니 만원짜리를 내고 남은 거스름돈이라는 걸 알게 됐죠. 광고에서 배우 최수종이 “그래서~ 500원입니다!”를 목 놓아 외치던 구구콘 이후 최고의 충격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래야 여름에 사무실에서 간식으로 돌리는 것 말고는 좀처럼 안 사먹다가 값을 알고는 경악하게 된 거죠. 게다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스크림 값 700원 인상 운운하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1500원이라뇨.
딴에는 골라 먹으라고 4개를 사온 애꿎은 남편에게 퍼부었습니다. “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 돈이면 고급 아이스크림도 사먹겠다”로 시작해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이렇게 사니까 재테크도 못하는 거다”까지 이성을 잃고 거품을 물었습니다. 가만히 듣다가 열 받은 남편은 “내가 사온 아이스크림 건드리면 냉장고를 박살내겠다”고 한마디 대꾸했죠. 한마디로 그깟 아이스크림콘 하나 때문에 가정법원 갈 뻔했습니다.
남편 몰래 아이스크림 4개를 다 먹은 다음 인터넷으로 가격을 뒤져 봤습니다. 굳이 부라보콘의 출생연도까지 따져 들어갈 필요 없이 2005년 봄만 해도 구구콘, 부라보콘, 월드콘 3대 콘이 700원이었습니다. 구구콘이 1985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10년 동안 200원, 30%가량 오른 셈이죠. 그런데 불과 4년 사이에 100%도 더 오른 겁니다. 부라보콘과 함께 장수 간식으로 자주 거론되는 새우깡이나 초코파이 값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오르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물론 빙과업계도 할 말이 없지는 않겠지요.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 값이 불과 몇 달 사이에 40%나 올랐다고 ‘부동산시장 기지개’ 운운하는 세상에서 아이스크림 가격 몇백원 가지고 투덜거리는 제가 치사한 걸까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