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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록 2009-08-05 19:12수정 2009-08-08 10:38

‘달빛, 소금에 머물다’ 시리즈.
‘달빛, 소금에 머물다’ 시리즈.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사진으로 나눔 실천하는 사진가 이규철, 그의 서정적인 시선
사진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돈, 명예, 지위?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규철(40)은 사진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산다. 빵도 아니고 밥도 아닌 사진을 어찌 사람들과 나눌까 궁금해진다.

그는 3년 전부터 시민단체 ‘새사회연대’에서 저소득층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자신의 전시를 위한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가족사진 한 장 없는 사람들에게 빳빳한 종이 위의 ‘가족’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들은 가족사진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편모나 편부가 많아서 어딘가 비어 있는 공간에 대한 상처가 있지요”라고 이규철은 말한다. 사진기가 낯선 부모들은 아이들만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다가 30~40분 지나 조금씩 셔터 소리에 익숙해지면 부모들은 앵글 안으로 들어온다. 1시간 이상 가족사진을 찍는 동안 굳어 있던 이들의 얼굴은 조금씩 환해진다.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순간이 온다. 가족사진의 힘이다. 그는 돈을 받지 않는다. 정성스럽게 찍은 가족사진을 즐겁게 건넬 뿐이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얼굴도 찍는다. 이것 역시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가 찍어준 사진을 고향 집에 해외우편으로 보낸다. 떠날 때보다 야위거나 더 주름진 남편, 아빠의 얼굴을 보고 그리움을 달랬다. 그의 사진은 외국인 노동자의 향수병을 치유하고 그리움을 전달한다.

‘군인, 841의 휴가’ 시리즈.
‘군인, 841의 휴가’ 시리즈.

‘군인, 841의 휴가’ 시리즈.
‘군인, 841의 휴가’ 시리즈.

그는 2년에 한 번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과 함께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찍어 전시를 한다. 부모들은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본다.

“대학교 다닐 때 진보모임 ‘현장’의 구성원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시위에 나가 찢어지고 벽돌에 맞아 다쳐서 왔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세상에 대한 진지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그리움 전하는 사진

이렇게 세상살이에 심각한 그가 사진기를 잡게 된 이유는 매우 낭만적이다. 경북고등학교 사진반 ‘청운’의 구성원이었던 그는 인근에 있는 여학교 사진반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그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사진기에 담았다. 군대를 다녀와서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시사저널, 웅진출판사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었다.

‘인도’ 시리즈.
‘인도’ 시리즈.

‘비 오는 날의 오후’ 시리즈.
‘비 오는 날의 오후’ 시리즈.

다큐멘터리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직장을 그만두고 연 첫 전시다. ‘군인, 841의 휴가’(2002년). 이 전시는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인기를 함께 얻었다. 사진은 그가 복무했던 부대 ‘53사단 127연대 10중대’의 일상을 찍은 것들이었다. 행군을 마치고 지친 부대원들, 일병의 군기 바짝 든 표정, 떠난 애인이 던져준 슬픔 등…. 풋풋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솔직한 기록이었다. 그는 원근감을 잘 살린 역동적인 구도와 자신만의 독특한 프레임 안에 인간의 감성을 섬세하게 담았다. 이후 그는 2003년 ‘경기문화재단 초청 사진전’, 2004년 ‘동강페스티벌 다큐멘터리사진가 33인전’,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라이프치히 행사’, 2008년 ‘아트 베이징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전시에 초청되는 작가가 되었다. 2007년 그의 두 번째 전시 ‘달빛, 소금에 머물다’에 걸린 10여점의 작품들은 100여만원의 가격으로 사진 애호가들에게 팔리기도 했다. 이 전시는 달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전남 신안군 증도면 염전, 오르락내리락 여인네 한복 치맛자락 같은 모래 해변 신두리 등, 우리 땅에 새겨진 풍경을 담았다. 사진평론가 박평종씨는 “야성의 자연이란 본래 거칠고 투박해야” 하는데 “그가 보여주는 야성에선 오히려 공을 들여 가꾼 유려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는 자연이나 그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도 서정성을 담아 표현한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스튜디오 아자(aza)를 운영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사진으로 찾는 내성적인 사진가이다.

사진, 나를 발견하게 하는 도구

사진가 이규철
사진가 이규철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진이다. 그 사진이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터준다”고 말한다. 한국의 굿, 시골 장터, 한국의 옛길 등 우리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웅진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찍은 ‘한국의 전통의상’, ‘한국의 종교’, ‘성곽’ 등의 영향이다.

지금 그는 한국의 암석을 찍고 있다. 선캄브리아기의 변성퇴적암이다. 그 지층을 찍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고 내 삶이 겸손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인생의 희로애락, 넘어야 하는 파고들을 사진의 힘으로 넘었다고 말한다.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은 때도 사진이 그의 곁에 있었고, 신나게 춤추고 싶을 때도 사진이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그를 지켜준 사진으로 사람들의 상처에 조금씩 다가간다. 마치 묵주 대신 사진기를 든 천주교의 수사 같다. 사람들과 나누는 ‘사진’은 밥보다 빵보다 맛있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제공 이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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