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바람피운 남친 지킬 수 있을까요?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믿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믿을 뿐,
안전한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없다니까
믿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믿을 뿐,
안전한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없다니까
Q 두 살 차이 나는 남자친구와 저는 3년을 만난 사이입니다. 영어학원에서 만났구요, 그사이 남자친구는 나름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고 저는 아직 취업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최근 남자친구가 직장 동료와 두어 달 바람 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그녀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했다고 하네요. 오빠, 오빠 하며 잘 따르고 말을 예쁘게 하길래 그만 획 돌아 일탈을 해보고 싶었던 거지 진지한 만남을 가지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깊은 관계까지 갔다고 하네요. 제가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정리를 한 상태구요. 남자친구가 후회하고 잘못했다고 해서 용서하고, 이 시련을 토대로 전보다 더 단단한 사랑을 만들어 가보자고 했죠.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가 여전히 남자친구와 같은 생활공간에 있다는 것이 신경 쓰입니다. 저는 남자친구를 자주 만날 수도, 신경 써 줄 수도 없는데 그녀는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는 셈이죠. 다시 그녀가 남자친구를 들쑤시기라도 한다면 또 흔들릴까 봐 걱정됩니다. 남자친구에게 잘 처신해줄 것을 당부하고 그도 그럴 거라 했지만 여전히 불안합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구속하려 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것도, 막으려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구경만 하는 것도 무책임한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남자친구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A 결론부터 말하자면 머리 나쁜 것과 바람기엔 특효약, 없습니다. 그런 약 있으면 내가 한 통 쟁여놓고 싶네요.
“켁, 정말 없어요?” 물론 쪼잔하고 피곤한 방법들은 있습니다. 수상한 기색이 보이기 전에 집요하게 그를 감시하는 것이죠. 일거수일투족 뭐 하나 전화로 확인하고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몰래 훔쳐보고 그의 알리바이도 크로스체크해서 낌새 이상해지기 전에 닦달하는 것. 하지만 이런 짓 하면 그를 지켜내기 전에 그가 자기 자신 지킨다고 당신을 버리겠죠. 게다가 남자는 나를 배신해도 일은 나를 배신 안 하는데, 남의 사생활 캐내면서 권리 주장하기엔 취업준비가 바쁘잖아요.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그럼 난 그를 걍 믿어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른 여자의 그림자를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연애 같은 거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그 여자 동료 말고도 가능성은 얼마든지 널렸으니까 한번 의부증은 통제 안 하면 증상이 악화될 뿐.
“그를 믿지 못하니까 상담하는 거잖아요!” 이쯤에서 버럭 한번 할 법하네요. 믿음을 주지 못한 건 그 남자 잘못이니까 ‘네가 믿을 만한 짓을 해야 내가 널 믿어주지’라며 충분히 억울하겠지만, 신뢰라고 하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계기를 제공하는 것보다 내가 자신의 의지로 상대를 ‘믿어내는 것’ 같아요. 사랑은 약속이나 의무 위에 성립하는 것도 아니죠. 신뢰를 주니까 사랑한다, 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그냥 믿는 것뿐입니다. 바꿔 말하면, 애초에 믿지 못할 남자 따위랑은 과감하게 헤어지는 게 차라리 나은 것 아닌가요.
“헤어지기 싫으니까 문제지!” 마음 같아선 당장 그 동료 목을 비틀고 남자친구 팔목에 전자팔찌라도 채우고 싶겠지만 정작 앞에선 쿨한 척 대범한 척 해야 되니까 더 분통하지요. 예, 고생하십니다. 하지만 좀 더 고생하십시오. 한 번 ‘기스’ 난 관계에선 대범한 척이 아니라 정말 대범하게 큰마음 먹고 사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남녀관계는 안전한 계약거래가 아니라 그때그때 전면승부니깐요. 당신도 인정했다시피 사람 마음은 구속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구속하려 할수록 멀어질 뿐입니다. ‘바람 피우면 무조건 헤어질 거야’라고 협박해도 어차피 할 놈은 어떻게든 하게 돼 있다 이거죠. 아무리 귀가 썩을 정도로 부탁한들, 바람 피울 남자는 어차피 바람 피우고, 또 개중에 어떤 이들은 더 좋아라 흥분하기도 하지요. 반대로 가만 놔둬도 아무 짓 안 하는 남자들도 있구요. 그런데 이게 또 딱 보고 선별도 못해요. 안전한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건 애초에 없다니까.
“믿었는데도 그가 또 바람 피우면 어쩌라구요!” 열불 나겠지만 실은 세 가지 선택사항밖엔 없습니다.
1. 모르는 척한다. 2. 바람난 여자와 끝내게 한다. 3.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다. 이 상황에서도 역시 그와 헤어지고는 싶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1번의 선택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2번처럼 남자친구 갈구다 보면 남자는 어느새 저쪽 그녀가 더 예뻐 보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차마 고개 못 들고 싹싹 빌어도 여자가 이참에 제대로 뿌리뽑자 싶어 조금이라도 더 들들 볶다 보면 남자들의 태도는 180도 돌변해서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라고 지들이 뭘 잘했다고 버럭, 더 큰소리거든요.
관건은 그렇게 속으로 치사하고 더럽게 견딜지언정 그와 계속 사귀고 싶은가의 문제!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사랑하고 싶은 상대인가, 오래도록 함께 가고 싶은 상대인가를 깊이 가늠해 봐야겠지요.
자,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연애관계를 지탱시키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것은 ‘내 권리를 확인시키면서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자발적인 의지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일으키는 건 단순히 ‘나의 매력’이죠. 저 밖의 보이지 않는 괴물들과 질 게 뻔한 싸움을 벌일 게 아니라 ‘그가 나를 계속 좋아하게 만들기 위한 나 자신과의 싸움’에만 집중하는 게 승률로만 치면 낫다는 얘기. 개인적으론 3년쯤 되어 장기전 돌입 전에 이런 해프닝 한 번 있어주는 게 차라리 좋은 의미에서 백신 효과도 있다고 보는데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1. 모르는 척한다. 2. 바람난 여자와 끝내게 한다. 3.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다. 이 상황에서도 역시 그와 헤어지고는 싶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1번의 선택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2번처럼 남자친구 갈구다 보면 남자는 어느새 저쪽 그녀가 더 예뻐 보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차마 고개 못 들고 싹싹 빌어도 여자가 이참에 제대로 뿌리뽑자 싶어 조금이라도 더 들들 볶다 보면 남자들의 태도는 180도 돌변해서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라고 지들이 뭘 잘했다고 버럭, 더 큰소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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