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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연애 심리적 자립부터

등록 2009-10-28 20:30수정 2009-11-11 20:05

어른 연애 심리적 자립부터.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어른 연애 심리적 자립부터.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혼자 있는 게 편하지만 너무 외로운 독신남, 나를 이해해주는 여친을 만나고 싶어요




Q 35살 남자 직장인입니다. 어려서부터 내성적으로 컸고 어릴 때 아버지는 사우디에 돈 벌러 나가셔서 그 존재를 몰랐다가 중3 때 간암으로 돌아가신 후엔 정말 내겐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구나 싶어 남모르게 밤중에 혼자 울었던 아이였습니다. 군복무 시절 어머니는 재혼하시고, 새 가족과 남들에게 무시받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아가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지금은 남들이 알아주는 기업에서 일하며 돈도 열심히 모아서 집도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주 외롭습니다. 여태까지 여자를 3명 사귀었습니다. 그중 한 여자는 그녀의 부모님이 이혼한 바 있어 제가 고민하다가 사이가 멀어졌고 또 한 여자는 되레 그녀가 우리 집 사정(아버지 안 계시고 집에 돈 없고 내가 자수성가)을 알게 된 후 살짝 변해서 제가 자존심 상해 이별했죠. 웃기는 건 헤어짐이 어떠했던 간에 세 명 다 헤어지고 나선 제가 좀 매달렸다는 겁니다. 아직도 가끔은 혼자 외로울 때,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립고 그때가 그립습니다. 또한 저는 동성 친구도 많지 않습니다. 친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먼저 연락하는 편이 많습니다. 대체적으로 집에서 혼자일 때가 많네요. 혼자 있는 편이 편하기도 하구요. 혼자 마시는 맥주가 제 친구가 되어주지요. 좀 마른 편이기 하지만, 호감이 가는 인상이고 예전처럼 숫기 없지는 않습니다. 아는 얘기는 잘하는데 유머 감각은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를 잘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을까요? 내가 좋아하고 또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이런 외로운 감정 없어질 것도 같긴 한데, 어렵네요.

A ‘나는 왜 연애를 못할까요? 어떻게 하면 연애할 수 있죠?’처럼 막막한 고민 상담도 없을 겁니다. 얼굴도 모르고 성격도 겪어 보지 않았는데 말이죠. 뭐 하긴 그거 알았다고 족집게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데 원문의 긴 글을 읽으며 어떤 ‘분위기’가 전달된 건 있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못 받고 크고 아버지가 간암 걸려 돌아가시고 어머니 재혼하시고 사귀었던 여자 세 명 모두에게 미련 생겨 물고 늘어졌던 ‘사실들’이 무겁다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나이 35살이 되어서까지 자신의 상처를 ‘베프’처럼 어여삐 보듬으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당신에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처가 있었다고 칩시다. 그리고 당신은 그 콤플렉스와 상처를 넘기 위해 열심히 이 악물고 노력해서 스스로를 성장시켰습니다. 번듯한 회사도 들어가고 돈도 모아 자기 집도 장만했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성취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속에 외로운 소년이 둥지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얻은 그 성취는, 그 콤플렉스를 빨리 버리라고 어렵게 얻어진 건데, 정작 본인이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소중히 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거죠. 왜냐, 그 상처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 외에 소중히 할 만한 게 별로 없으니까. 물리적으로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상처를 자신을 설명하는 도구로 쓰면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찌되었던 ‘상처’ 이야기는 피곤합니다. 왜냐면 대개 ‘상처’ 그 자체가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 이야기가 잘 먹혀들기라도 하면 그것 역시도 문제이지요. 상처를 극복하거나 잊는 게 아니라 상처에 자꾸 의지하게 되니까요. 심지어 내가 나의 상처를 소중히 하는 것처럼, 나의 상처를 소중히 해줄 수 있는 ‘타인’을 찾게 되고 그것이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돼버리니까. 이때 자기연민과 자기애가 굳는 건 시간문제이지요. 이러면 사람 참 빨리도 늙습니다.

밤중에 혼자 외로이 울었던 아이, 그 아이 아직 어디에도 못 갔습니다. 그 세 여자들과 막상 이별을 겪어야 했을 때 매달렸던 것은 어쩌면 그때의 그 ‘울보아이’가 ‘이렇게 상처 있는 나를 어떻게 내다버릴 수 있느냐’며 나 좀 구해달라고 치맛자락을 부여잡은 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약한 모습 보이면 잔인하게도 식겁하고 도망간다죠. 요새 여자들 약아서 경제적 짐은 물론이요 심리적 짐도 기피하니까. 하긴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일 수도 있죠. 타인이 나를 구해준다고? 그건 119 응급구조대만 할 수 있는 것이죠.

행여나 이 사연을 보낼 때, 어떤 ‘연애기술’을 기대했던 건 아니죠? 연애는 나이 먹어도 실력이 향상되는 일이 없어요. 아무리 반복해도 결국엔 젊을 때처럼 똑같이 상처 받고 비슷한 아킬레스 포인트에서 막히죠. 아무리 지금 ‘숫기가 좀 생겼다’ 해도 나이 먹어서 연애한다고 좋아질 건 아무것도 없지요. 다만.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다만.

이젠 정말 내가 좋아하고 또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걸리적거리는 것’을 스스로 없애야 합니다.
일단 경제적 자립이 되어 있으니 요새 ‘어른아이’들이 연애할 때 돈 때문에, 무능함 때문에 헤어지네 마네…라면서 돈 앞에 얼마나 제정신일 수 있나를 시험해볼 필요가 없으니 천만다행.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하나 더 ‘어른’들의 사랑에는 필요한 게 있죠. ‘나는 충족되어 있다’라는 풍부하고 행복한 기분, 단선적으로 말해 경제적 자립과 더불어 ‘심리적 자립’이랄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숨어서 어리광이람.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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