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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 나, 명품녀 왜 샘나죠?

등록 2009-11-18 18:54수정 2009-11-18 18:55

검소한 나, 명품녀 왜 샘나죠?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검소한 나, 명품녀 왜 샘나죠?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된장녀-나쁘다’ 위안하기보단 경험해보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문해보시길




Q 34살 여자입니다. 아이 둘에 남편은 의사이고, 저도 일을 합니다. 남편도 많이 벌고, 저도 꽤 벌지만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너무 아낀다 싶을 정도로. 명품을 사거나 사치스런 취미 생활을 둘 다 좋아하지 않죠. 그런데 어떤 모임을 계기로 한 여자를 알게 됐습니다. 그분의 남편도 의사고 그녀는 일을 안 하는데 아주 바쁘더라고요. 생활이 저랑 너무 다릅니다. 외제차 몇 대에 명품 쇼핑을 즐기고 외국여행도 자주 나갑니다. 아이들 교육도 집도 무척 럭셔리. 도우미 쓰는 건 애교죠. 사실 벌이는 저희 집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쓰는 수준은 소득이 한 열 배쯤 차이 나는 듯 보여요. 나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뿐이라고 해도 위축이 됩니다. 막상 써 볼까 해도, 스스로가 용서가 안 돼서 지갑을 열 수가 없습니다. 저는 돈 없이 자라나서 쓸 줄 모르고, 남편 집은 너무 검소하게 살아와서 쓸 줄 몰라요. 남편에게 도우미 한번 써 보자 했다가 핀잔만 받았습니다. 명품 백은 사오면 바로 반품시켜 버릴 거래요. 난 심지어 돈도 벌고 있는데 한번 누려 보고 싶다는 마음과 내가 된장이 될 순 없다는 마음. 쓸 것도 아니지만, 옆에서 강하게 말리는 남편. 애써 ‘나는 검소하니까’를 속으로 외쳐대도, 막상 돈 좀 쓰면서 사는 사람 앞에선 위축되는 마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속이 쓰립니다. 차라리 모르고 살았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을 텐데, 사람들 잘못 만나서 스스로를 옭아매네요.

A 사람은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 된장아줌마 신경 꺼라, 그런 피곤한 모임 당장 관두라, 지금 너무 건전하게 잘 살고 있는 거다, 심란하게 만든 상대와는 거리 두고 양식 있는 사람들끼리 놀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당장엔 위로가 될진 모르지만 이거야말로 ‘위축된’ 해결 방식일 것 같습니다. 초라하고 비참한 기분이 드니까 나를 보호하기 위해 피하자는 거잖아요.

엄밀히 말해 지금의 기분 나쁨은 실은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데 못 하고 있어서’ 때문입니다. 남편이 엄격하게 제재를 가하고 있고, 내 안의 또다른 자아가 도덕적인 이유로 못 하게 억압하고, 나는 명품 숍 앞에서 움츠리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옳든 아니든 애초에 그 경험 자체가 원천봉쇄되어 있으니 기분이 떨떠름한 거지요.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나의 입장을 정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콤플렉스 같은 게 만약 있었다면 그것도 해소가 될 것 아닙니까.

겁먹지 마십시오. 한번 해 보는 겁니다. 일단 명품 구입과 가사도우미 한번 써 보기부터. 명품 숍에 용기 내어 들어갔더니 내 차림새를 훑습니다. 조금 따라다니다가 하이톤 목소리의 ‘삐까번쩍’한 ‘친구 같은’ 모녀 쇼핑족이 들어오니 바로 그들에게 건너가는군요. 괜히 성질 나서 망설임 없이 80만원짜리 스웨터를 하나 샀다고 칩시다. 막상 입어 보니 아흐 감촉도 좋고 몸 라인도 살고 … 그런데 집에 가서 보니 어째 매치되는 아이템이 없네요. 이 옷에 맞는 치마, 바지, 심지어 외투나 구두도 마련해야 이 옷이 ‘살 것’ 같네요. 한편, 명품인지 내 주변에선 아무도 못 알아보니 좀 억울합니다. 명품 가방을 사보니 주변에선 ‘A급 짝퉁’ 참 잘 만들었다며 어디서 샀느냐고 묻습니다. 가사도우미도 불러 봤습니다. 부르긴 불렀는데 괜히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하게 됩니다. 잔소리하면서도 미안하니까 같이 집안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집에 귀중품도 없으면서 괜히 신경도 쓰입니다. 나름 의사 집인데 수고료에 웃돈 안 줬다고 은근 눈치 주기라도 한다면, 아아 차라리 사람 쓰는 감정노동 할 바에야 내가 직접 후딱 해버리고 말지 싶습니다. 반면, 전문가가 다르긴 다르구나, 집안 구석이 이토록 깨끗해질 수도 있구나라고 신천지를 발견하면 수고료 이상의 가치가 되어 돌아오는 거구요. 우렁각시가 다 치워놓는 동안, 외출해서 마음 편히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명품 가방 역시도 디자인을 잘 고르고 소중히 사용하면 향후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고 그것은 그것대로 빈티지의 멋이 생기며 ‘그 값’을 톡톡히 합니다.

즉, 그 소비 대상의 액수나 선입견과 이미지보다도 그 개별적인 소비가 나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를 경험을 통해 냉철하게 가늠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녀=된장녀’ ‘된장녀-나빠요’는 아니다 이거죠. 굳이 ‘된장’이라고 명명해야 한다면 그건 ‘무엇’을 구매했다기보다는 그것을 구매한 ‘이유’가 좀 촌스러울 때죠.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우여곡절 경험도 하고 여러 가지를 느끼면서 냉정하게 자문해 보세요. 나는 정말 저렇게 살고 싶은가? 그것들이 정말 갖고 싶은가? 묻다 보면 점점 ‘기분 나쁨’의 본질이 더 보일 겁니다. 그녀의 소비나 사치가 부럽거나 얄미워서가 아니라 어쩌면 돈에 심리적으로 지배받았던 유년기의 기억이 마음속 깊이 아프고 서러웠던 것인지, 남편은 나를 더 이상 여자로 봐주기보다 경제적 파트너로만 보는 게 아닌지, 혹시 나는 여태껏 한 번도 남편 말을 거역하고 산 적이 없었는지, 휴식과 호사는커녕 너무 과하게 달리고만 있진 않았는지, 난 ‘나’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그저 ‘남’을 위해서만 살아온 게 아닌지. 그렇다면 그녀는 그저 하나의 깨달음을 위한 계기였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고착되고 패턴화된 생활에서 좀더 유연해지라는 신호탄이었던 걸 수도.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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