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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보다 관리자 위한 사기진작? 노!

등록 2009-12-02 18:47수정 2009-12-06 14:23

직원보다 관리자 위한 사기진작? 노!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직원보다 관리자 위한 사기진작? 노!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회사에 미련 없는 대충대충 직원들, 어떻게 독려할까요?
Q 한 중소기업의 40대 중견 관리자입니다. 위로는 사장님 한 분, 밑으로는 직원 100여명이 있습니다. 아직 중소기업이고 서비스업이다 보니 급여나 복지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똑똑한 사람은 들어오지 않고 들어오더라도 곧 그만두곤 합니다. 사장님도 효율을 따지지 먼저 베푸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일부는 나름대로 열심히 업무에 임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에 큰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전 그들이 입사해서 결혼하고 집 사고 아이들 대학 보내는 데 부족함 없는 직장을 만들어주고 싶고, 남은 생 그것만 해낸다면 죽을 때 조금 덜 부끄러울 것 같아요. 제가 전체 관리자가 되고부터는 여력이 되는 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는 건 하느라고 해 봤죠. 성과급 제도나 인사평가시스템도 만들고, 없던 워크숍도 하고, 책도 사주고, 열심히 공부해서 감동적인 연설(?)도 해 보고, 하지만 그때뿐이네요. 사장님의 마인드는 좀 어떻게 움직여 보겠는데 직원들 움직이긴 너무 힘이 듭니다. 당시엔 공감하지만 실제 움직이진 않지요. 감동경영, 논공행상, 폭풍 같은 마케팅, 치사한 갈굼, 이 모든 걸 병렬로 융단폭격 해야 되는 것일까요? 좀 겁은 나지만 된단 보장만 있다면 할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래저래 답답합니다. 경선씨가 경영이 전공인지 아닌지는 제가 알 바 아니나 체면 불구하고 여쭈어 봅니다.

A 사원들 사기 진작한다고 알려진 방법은 참 다양도 하지요. 무조건 돈 많이 주는 게 장땡이라는 회사, 오만 잡다한 교육프로그램과 평가시험으로 들들 볶는 회사, 비전 설립과 공유에 목숨 건 회사, 쇼맨십 사원복지프로그램으로 언론홍보 열심히 하는 회사, 범생이 사원 열명쯤 모아놓고 사장님과의 ‘허심탄회토크’(왜 꼭 여성 사원들이 사장님 양옆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주선하는 회사, 연말에 그저 참기름 세트냐 프라이팬이냐가 최대 고민인 회사 등등. 참 가지가지 다르지만 하나 같은 건 있지요. 바로 대개의 직원들에겐 심드렁, 짜증, ‘울며겨자먹기’라는 점입니다. 그 ‘과외의’ 숙제를 해 맞추느라 본 내 일 다 못해 야근해야 되고, 이런 후딱 깨는 걸 사줄 바에야 차라리 월급 몇 만원이라도 올려라 싶고, 사장님과의 술자리도 대부분 ‘징집’돼서 나가지요. 성과급 제도나 인사평가시스템도 자칫하면 무용지물이거나 제 발을 잡고요. 아 뭐 가끔 워크숍 등산 때 기분이 잠시 상쾌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요지인즉슨 이 회사 사람들만 호응이 없는 게 아니랍니다.

왜 그렇게 사원들이 삐딱 심드렁하냐면요, 사기진작 프로그램은 사원들보다도 그것을 기안한 관리자나 경영자의 사기진작을 위한 경우가 많더라는 겁니다. 또한 프로그램들이 ‘메이드 바이 관리자’니까 공감 더 안 되죠. 내가 사원일 때 ‘이런 걸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바랐던 것을 실현하는 경우, 한 번 호응이 좋았던(좋아 보였던) 것을 재탕하려는 경우, 혹은 조직의 특성을 무시하고 ‘대기업병’에 걸린 경우. 사원들은 거꾸로 기안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연설시간에 졸지 않고 유머에 웃어줘야 하는 감정노동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하긴 애초에 이러한 외형적 동기부여의 효과 자체에 크게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일종의 이벤트일 뿐이니까요. 똑똑한 사원들이 자꾸 빠져나간다고 하셨죠? 과연 돈과 복리후생이라는 조건 때문일까요. 그랬다면 정말 똑똑한 사원들은 아니었던 거구요, 실은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조건을 만회해줄 다른 상위의 가치, 즉 ‘일하는 재미와 보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조직의 윗사람들이 진정 집중해야 할 핵심은 겉으로 보이는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 식의 매스게임이 아니라 실질적인 일상업무 환경에서의 결핍과 요구죠. 일은 재미있는가, 재미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일한 만큼 보상이 되고 있는가, 직업적 발전과 능력 향상이 되고 있는가, 동료들과 나는 서로 필요로 하고 의지하는가, 그 무엇보다 자발적 동기부여(타발적 동기부여는 한계가 있으니까)가 가능한 환경인가 등의 일상적인 일 욕심과 인정욕구의 충족 말입니다. 님이 여러 기획을 가지고 직원들 사기진작으로 업무 성과와 사랑을 얻으려는 것 이상으로, 사원들의 욕구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고로 돈 많이 못 줘서 좋은 인재 놓쳤네, 는 아니죠.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또한 부디 피하셔야 할 것은 ‘나 홀로 슈퍼 히어로’ 노릇입니다. 본인도 피곤해지고 주변 사람은 더더욱 피곤해져서 ‘제발 너나 잘하세요’ 할지도 몰라요.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세상 짐 혼자 다 짊어진 듯 인상 찡그리며 어깨에 힘 빡 들어갑니다. 게다가 직원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고민하는데 당사자 마음이 답답하고, 행복하게 해주고픈 대상들을 똑똑하지 못하다고 못 미더워해서 되겠습니까. 약한 모습 보이기 싫고,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은 관리자의 욕망, 그리고 은근 돈과 시간 깨지는 분기별 사내 이벤트는 잠시 뒤로하고 이참에 제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젝트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의욕과 애사심 없어 뵈는 백명들이 왜 없는지는 과연 누가 제대로 알고 있겠습니까. 해결방법은 늘 문제 ‘안’에서 발견되잖아요.

그래도 정 ‘이벤트’ 할 여유도 만드실 거라면 백명 조직의 이점, 서비스 직종의 이점을 잘 살릴 수 있는 한 가지로 좁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 중소기업이라서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중소기업이라서 하면 아주 좋을 것들로요. 경영 전공자가 아닌 제가 염치 불고하고 말씀드려 봅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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