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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타가 되고 싶었어/조진국

등록 2009-12-09 18:36수정 2010-01-07 16:26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얼마 전 친구를 만났다. 워낙 재미있는 친구인데, 그날은 영 말이 없었다. 나 혼자만 반가웠는지 그는 커피숍의 좁은 흡연실에서 담배만 피워댔다. 그동안 별일 없었느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뜬금없이 ‘사람들이 다 싫다’라는 염증 섞인 한마디였다. 농담처럼 ‘나도 싫겠네?’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처럼 낮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무래도 요즈음 자신이 우울증 비슷한 걸 겪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다고 했다. 한발만 디디면 추락하게 될 어떤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건물 하나 세워지지 않은 황량한 공간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괜한 사람들에게 짜증만 낼지 모르니,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친구의 말을 어기고 전화를 했다. 컬러링 음악이 바뀌어 있었다. 밝은 분위기의 크리스마스캐럴이었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날리고 두 손에 선물을 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분위기였다. 전화를 받지 않는 동안 캐럴을 들으며 나는 반대로 어두워져 갔다. 왠지 친구가 우울한 이유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트리를 감싸고 쇼윈도를 밝히는 꼬마전구와 성탄절을 알리는 캐럴, 새 달력이 나오고 송년회 날짜가 하나씩 잡히는 연말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안정된 직장도, 따뜻한 사랑도 모두 비켜간 불혹의 자신을 되돌아보다가 그는 우울의 덫에 갇힌 게 아니었을까. 캐럴 대신 내 귀에는 다른 노래가 오버랩됐다. 왠지 친구는 토마토의 ‘무비스타’라는 노래를 헤드폰에 꽂고, 불빛이 번지는 어느 뒷골목을 주머니에 손을 넣고 혼자 걷고 있을 것 같았다.

너의 꿈은 반짝이는 무비스타

하지만 지금 넌 거리의 많고 많은 삐에로일 뿐이야.

고개 들어봐, 저기 샤이닝 스타.

이제 네가 갈 길은 저만큼이나 멀리 있단다.

(1994, 토마토, 무비스타)


서른이 됐을 때도 우린 비슷한 얘기를 나눴었다.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터널의 중간에 갇힌 것 같다고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비스타가 되고 싶었지만 우린 분칠한 피에로였고, 반짝이는 별이고 싶었지만 별을 밝혀주는 어둠일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빠져나오는 동안 친구는 그 캄캄한 터널에 계속 혼자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될 것이다. 외면에 가린 내면을 볼 줄 알고, 만나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돌아서면 생각나는 친구. 그는 여전히 내 인생의 무비스타이고 샤이닝 스타이다. 관객이 한 사람뿐이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마지막까지 객석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만들어낼 최고의 빛나는 영화를 보며 기립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조진국 작가/<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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