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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는 척, 진짜인 척

등록 2010-03-31 19:45

[매거진 esc] 책에서 배우는 위로의 기술
영화감독이자 개그맨인 기타노 다케시는 하지 않아도 좋을 말까지 참지 않고 글로 써버리곤 한다. 폭력이건 바람기건 미화하겠다는 생각이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읽는 쪽의 마음에 들건 말건 그가 솔직하게 휘갈긴다는 믿음(혹은 환상)이 생긴다는 뜻이다.

<독설의 기술>에서 그는 남자라면 모두 그렇지 않을까라며 이렇게 말한다. “한창 끓어오를 나이인 열일곱, 열여덟 때라 해도 1인자인 아름다운 언니는 어쩐지 마돈나 같아서 숭배하기만 하고 손을 대지 못한다. 하지만 2인자, 3인자인 여자들과는 끈적끈적한 관계를 맺고는 한다. 그럼 2인자, 3인자를 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떻게 벗길지, 어떻게 잘지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두근거리기도 한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외로움의 정체가 혹시 이것이었을까. 1인자의 고독.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1인자 주제에 얼쑤절쑤 무릎을 치고 있었는데, 최근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제보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독설의 기술>을 인용해 말하겠다. “마성의 여자. 남자를 동하게 만들어놓고는 다가가면 멀어진다. 말을 듣지 않는 것뿐이라면 마누라와 다를 게 없지만, 마누라는 ‘마성의 여자’가 아니라 ‘마물’ 그 자체니까 할 말 없다.”

이봐, 그냥 ‘다른 여자’가 필요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게 어떨까. 이쯤 되면 뭘 이해할 기력도 남지 않는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친구에게 “너의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가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외로워 죽겠고 물어뜯을 손톱도 남지 않았는데 “다른 여자는 필요한데 너는 말고”라는 말을 들어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누가 화성에서 오고 누가 금성에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쪽 다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는 걸까.

기타노의 결론인즉, 남녀관계는 거짓말이 기본이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속는 척하고, 속아줄 때까지는 진짜인 척하고. 운이 좋다면, 그 말을 믿게 되는 날이 올지도.

이다혜/<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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