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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위안이 되는 까닭

등록 2010-06-09 22:03

[매거진 esc] 책에서 배우는 위로의 기술
프로야구팀 기아 타이거스의 최희섭 선수는 지난해부터 확 좋아진 타격감의 비결로 등산을 자주 꼽는다. 체중조절과 마음 다지기에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처음 산에 오를 때 허리가 안 좋다는 고민이 있었지만 어느새 머리까지 맑아지며 성적이 좋아지더라고. 체격도 실력도 정상급인 프로야구 선수의 예를 들 것도 없다. 위기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겠냐고 ‘어른’들한테 물으면 ‘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산이 나를 살렸어”라고. 산이 왜 좋습니까? 산이 좋다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묻는다. 살을 많이 뺐던 지인은 살 빼는 데 그만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J 선생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데 좋다고 했다. 공자의 <논어>에서 비롯한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표현을 인용하는 사람도 자주 보았다. 인간관계에 좋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 경우, 등산보다는 하산이 중요한데, 지인들과 산 아랫자락에서 막걸리나 맥주를 마시는 기분만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십년 전 신입사원 연수 때 한라산에 올랐는데, 당시 편집국장이던 선배는 유난히 뒤처지던 나를 도와주며 “오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주변을 둘러보며 즐길 때 산행이 완성된다고 했다. 하지만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기차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산을 즐길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몇 개의 봉우리를 정복하는 일에 평생을 거는 사람도 있고, 정상에서 맛보는 성취감에 중독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일이 인생을 닮았다고도 많이 한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을 읽다가, 산이 위안이 되는 까닭의 비밀을 약간은 더 알게 된 듯하다. <행인>의 이치로는 아내가 동생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학자로, 천재적인 두뇌와 학습된 취향까지를 완벽히 갖추었다. 그런 그에게 인간은, 없어도 괴롭고 있어도 괴로운 존재다. 이치로의 얼굴에는 쓸쓸한 고독이 넓은 이마를 따라 야윈 볼에 흘러넘쳤다. 그는 동생에게 토로한다. “결국은 사람들과 맞지 않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자연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걸까.” 염세를 풀어주는 산세. 그래서 지방선거날, 투표소에 그리도 등산복 입은 사람이 넘쳐났던 건가?

이다혜/<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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