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사람과 사람 사이.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종종 커다란 수첩을 꺼내 사람 지도를 만든다. 평생 아끼고 챙기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을 크고 작은 동그라미로 그리는 것이다. 올해 처음 지도에 입성한 사람도 있고, 누구는 지난해보다 더 큰 동그라미로 한 자리 떡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작년에는 가장 큰 동그라미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지금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린 이도 있다. 이 일의 시작은 어떤 선배의 충고 때문이었다.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외쳐대는 그 선배는 첫번째 준비물로 ‘사람’을 들었다. 늙어서 쭈그렁 할망구가 되어도 같이 놀아줄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살다 보니 그 말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더구나 내 삶의 철학은 ‘죽도록 웃기게 놀면서 살자’가 아니던가!
돌아보면 삶의 순간순간마다 놀아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20대 초에는 한없이 푸근하기만 했던 대학교 앞 술집 주인이 놀아주었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을 핑계 삼아 그 어둑한 술집으로 기어들어가면 그녀가 실컷 놀아주었다. 사진기를 잡고부터는 나보다 어리지만 ‘위대한 사진’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손톱에서 피나게 셔터를 눌러댔던 청년들이 놀아주었다.(사진학과 작업실은 때때로 십원짜리 동전이 오가는 도박판이다) 회사에서는 매번 ‘잘해낼 수 있을까’ 소심하게 움츠러들 때마다 선배들이 “잘 노는 것이 남는 것이여” 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음식 기사를 쓸 때는 하루 종일 프라이팬을 돌리는 요리사들이 놀이도구로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었다. 이들과 놀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밥’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건넨 나의 첫마디, “나랑 밥 먹을래요”가 없었다면 ‘관계’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밥은 섬 같은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밥알이 오고 가는 동안 식탁에는 서로의 과거가 지나가고 지금의 시간이 묻어난다. 그래서 ‘밥 먹기’는 중요하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한다. 기가 찬 것은 먹는 밥의 종류가 세월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는 점. 설렁탕에서 파스타까지. 음식문화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연재에서 다루려는 이야기는 이 ‘밥’에 대한 것이다. 살면서 내 지도에 등장한 사람들과 먹었던 밥, 세월에 따라 달라졌던 밥, 함께 그 밥을 먹었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개봉박두. 오늘은 예고편이다. 본편은 다음주부터.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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