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회덮밥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가로수길에서 만난 사진가 ㅈ과 먹은 일본식 회덮밥
가로수길에서 만난 사진가 ㅈ과 먹은 일본식 회덮밥
6년 만인지 7년 만인지 모르겠다. 사진가 ㅈ을 다시 만난 것이! 20대부터 흩날리던 은발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물갈퀴처럼 쫙쫙 벌어지는 눈웃음도 예전과 똑같았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프리카에서 산 것도 아닌데, 그는 한국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어느 날 훅 다가온 ‘사진’을 흔쾌히 받아들여 직업으로 삼았고, 그 일로 어렵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을 탓하는 법이 없었다. 간간이 그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몇 권의 사진집도 냈다고 한다. 이제는 상업사진보다는 콘셉트가 있는 작품사진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오빠,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근황을 물었다. 6년째 한 살 연상의 여인과 연애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 안 해요?” “우리는 같이 늙어갈 건데, 서류 같은 거 필요 없을 것 같아. 지금 충분히 좋아!” 그는 잘 익은 호빵처럼 따스해 보였다. “우리나라 부부들은 불행한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그가 보기에 우리 시대 부부들은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산다는 것이다. “불행한 첫째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거지. 가정이 너무 아이 중심인 것 같아. 그리고 자신에게 잘 맞는 이를 고르는 능력도 부족해서 실수도 하고. 그런 훈련 받은 적도 없지. (이성을 잡아끄는) 호르몬의 작용은 한계가 있어. 서로를 아껴주는 노력을 계속해야 되는데, 그걸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인지, 이런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리면서 산 건지는 알 수 없다.
이런저런 수다로 정신줄 놓고 있을 때 식탁에는 ‘일본식 회덮밥’이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네꼬맘마’의 차림표에 적힌 ‘일본식 회덮밥’은 ‘바라치라시’와 닮았다. 바라치라시는 일본에서 아이가 3살, 5살, 7살이 되면 시치고산이라는 잔치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먹는 대표 음식이다. 각종 생선과 채소들을 잘게 잘라 초밥 밥(샤리)에 올리는 음식이다. 지라시초밥과도 비슷하다. 지라시초밥도 생선 조각들을 초밥 밥에 올리지만 생선 크기가 바라치라시보다 조금 크다. ‘지라시’는 ‘흩뿌리다’라는 뜻이다. 언뜻 보면 생선비빔밥이나 회덮밥처럼 보인다. 간이 잘 밴 밥 위에 연어, 참치, 무순 등이 올라가 있다. 어느 하나 제 잘났다고 자신을 들이밀지 않는다. ‘재료의 조화’가 맛을 결정한다. 하나가 너무 강한 맛을 뿜어내면 맛이 없어진다. 부부생활도 비슷하리라!
사진가 ㅈ은 요즘 반려자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네꼬맘마’는 7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요리사 오기하라 지카시씨가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그는 <오기하라 상, 잘 먹겠습니다>라는 책도 출간했다. (‘네꼬맘마’ 02-517-0905)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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