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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연기 속 애정사

등록 2010-08-04 20:17

돼지고기 연기 속 애정사
돼지고기 연기 속 애정사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여름날 아스팔트에 어둠이 내리면 두근거림이 고개를 든다. 향수 같은 거다. 그런 날은 흰소리를 마구 질러도 “허허” 웃어줄 친구가 필요하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서울의 한 고깃집에 친구들이 뭉쳤다. 40대 중반의 A, 이제 40대 초반에 들어선 B와 C, 아직도 싱그러운 미모를 자랑하는 30대 D. 남자 둘과 여자 셋이 뭉쳤다. A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여자다. 한길을 당당하게 걸어온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넉넉한 웃음이 그의 얼굴에는 있다. B는 멋쟁이다. 헌팅캡이 이 남자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요리 블로거로 활동한다. C는 세상을 주유하는 별 같은 사람이다. 알래스카부터 브라질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늘 그의 몸에는 여행지의 이야기를 적은 수첩과 카메라가 붙어 있다. D는 외국계 회사를 다닌다. 언제나 정도를 지키는, 절제된 미모가 매력인 여성이다.

그날 우리들을 엮어준 것은 ‘사랑’과 ‘돼지고기’였다. A는 결혼한 지 15년도 넘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은 1년에 한두 번 본다. 그래도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고 애교를 부린다. ‘꽉’ 돼지고기를 깨무는 입술은 고혹적이다. B는 끊임없이 연인을 찾아 헤매지만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가 줄어들어 연애가 쉽지 않다고 불평이다. 그 외로움을 고기 한 점으로 메운다. C는 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아내를 신처럼 모신다. 애처가이거나 살려고 몸부림치는 거다. D는 결혼한 지 이제 고작 5년째. 남편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지 말해달라고 보챘단다. (헉! 가능한 일일까!)

치익~ 돼지고기의 기름이 뚝뚝 석쇠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이야기의 농도는 진해졌다. 숯불구이는 이 맛이다. 짙어지는 사랑이야기 같은 맛! 떨어지는 기름 때문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고기 맛이 더 좋아진다. 고기는 숯향을 걸치고 에로틱하게 몸을 꼰다. 돼지고기가 없었다면 각자의 애정사는 투정을 넘었을 것이다.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자 사랑 따위야 안중에도 없어졌다.

돼지고기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식재료다. 예부터 소는 밭을 갈고, 닭은 알을 낳았다. 부담 없는 가축이 돼지였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지금만큼 돼지고기를 많이 먹지는 않은 듯하다. <태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말하길, ‘조선 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사신들에게 쇠고기나 양고기를 주라’고 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규합총서>에는 돼지고기 요리법이 등장한다. 즐기지 않는 정도였나 보다.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전라도에서는 향토음식으로 ‘애저찜’이 있었다. (지금도 하는 곳이 있긴 하다) 돼지의 새끼집에 든 돼지새끼를 삶아 먹는 음식이다. 기절초풍하지 마시라. 새끼를 가진 귀한 돼지가 죽으면 아까워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그날 우리가 찾았던 음식점은 ‘흑돈가’다. 제주도에 유명한 ‘흑돈가’에서 모든 식재료를 가져온다. 제주도 흑돼지가 주메뉴다. 이 집은 제주도 ‘흑돈가’의 사장인 임종훈(56)씨의 용산고등학교 25회 동창들이 뭉쳐서 만든 집이다. 이곳은 소스가 특이하다. 멜젓(멸치젓)이다. 총 좌석이 100석이 넘는다. 모임하기에 좋다.


이들처럼 친구들과 ‘우리들만의 맛집’을 열고 밤이 새도록 사랑타령을 하면 좋으련만!

흑돈가/강남구 삼성동/1만3천원~1만4천원/02-2051-0008.

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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