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에 어울리는 와인은?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소설가인 한 후배가 웃으면서 내게 흰소리를 한다. “선배, 요새 단편소설 쓰시데요, 팩트 맞아요?” 연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후배님, 사실 맞고요~~” 그 후배는 실명을 쓰면 재미있을 거란다. 후배님의 충고에 큰 감동을 받아 이번주는 실명이 나간다. ‘엄경자’ 이름에서 내공이 느껴진다. 그는 서른네살의 여자다. 젊은 여자의 이름치고는 무겁다. 우리 어머니 세대의 것이다.
어딘가 촌스럽기까지 한 그의 이름 앞에는 ‘와인 소믈리에’라는 명패가 달린다.
몇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 와인 시음장에서였다. 그가 와인을 몇 모금 마시자 그의 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시멘트 색으로! 와인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폭 빠진 소믈리에들의 숙명이다. 몇년 동안 수천가지의 와인을 테이스팅하다 보면 이가 급하게 와인에 반응한다. 몇 시간 뒤 희고 고운 이로 돌아왔지만 그 희한한 색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는 불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을 공부했다. 훅 불면 날아갈 것처럼 ‘얇은’ 체구지만 자신의 인생을 단단하게 꾸려 가는 사람이다. 그는 90년대 말 금융위기 때 용감하게 무작정 프랑스로 건너가 보르도에 있는 소믈리에 학교 ‘카파’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 이 학교는 그를 롤모델로 한 한국인들이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여름날 소나기를 뚫고 길을 나섰다. 손에는 고소한 와플이 들려 있었다. 와플은 밀가루와 달걀, 우유 등을 반죽해서 바둑판 문양의 틀에 굽는 과자다. 벨기에식과 미국식이 있는데 맛이 조금 차이가 있다. 이스트와 베이킹파우더, 설탕의 양 등이 차이를 만든다. 미국식이 조금 더 달다. 와플의 독특한 문양은 중세시대에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주방기구 대신 방패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에게 가져간 와플은 여의도의 작디작은 와플집 ‘벨기에 와플’(02-3775-0608)의 것이다. 이 집의 장점은 토핑이 없다는 점이다. 바삭한 와플로만 승부한다. 개당 1800원. 주인은 벨기에 사람인 파트리크 판볼파위다. 할아버지 대부터 벨기에에서 와플집을 했다고 한다.
비 오는 여름날, 나눠 먹는 달콤하고 바삭한 와플 맛이란! 그는 액체의 미묘한 맛을 뛰어나게 감지하는 이답게 덩어리의 맛도 정확하게 집어낸다. “와, 맛있어요.” 그가 와플에 답례로 선물을 준다. ‘어플’이다. 회사업무와 관련 없이 와인 어플을 만들었다. ‘엄경자 소믈리에 와인노트’(wine-note.co.kr) 아직은 베타버전이고 추석이 지나면 더 보강할 예정이란다. 자신의 테이스팅 노트도 공개하고 마리아주가 훌륭한 와인과 음식도 소개한다. 철저하게 그의 주관이 개입된 ‘어플’이라고 말한다. ‘엄경자’만의 복잡하고 구수한, 달큰한 어플이다. 역시 인생을 단단하게 산다. “엄샘, 벨기에 와플과 잘 맞는 와인도 추천해주셈!”
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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