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다른 살리에리랑 하는게 상책!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동료가 모차르트 같고 저는 살리에리 같아 괴로워요
Q 회사에서 같은 직급의 한 동료가 있습니다. 저랑 마찬가지로 제품기획과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친구인데요, 기획서를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제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실제 판매에 이르기까지 경쟁하게 되는 동료입니다.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보면, 제가 기획한 것이 상품화되어 더 잘 팔리지만 저는 언제나 그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언제나 그 동료가 모차르트 같다고 여겨지고, 전 그에 비해 살리에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이렇게 엄밀히 결과론적으로 따져봤을 때 제가 그 동료보다 나음에도, 이 못난이 병은 무엇일까요?
A 이겼지만, 사실은 내가 졌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이중으로 괴롭습니다. 기에 눌리는 상태도 괴롭고 기에 눌리는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마주하며 감당하는 것도 괴롭고. 경증의 모차르트-살리에리 갈등이라면 이렇게 보듬는 방향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구나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살리에리일 수밖에 없다고. 누구나 저마다의 고민과 결핍이 있고 그것은 또다른 모차르트들에 의해 상대적으로 잔인하게 부각이 되어 괴로운 거라고. 그러니 나만 열등의식과 피해의식 가졌다고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다 거기서 거기여’ 하며 안심하는 거랄까요. 한번 그 동료도 살리에리인지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말을 건네보세요, 실은 나, 너에게 질투 난다고. 이건 선전포고라기보다 은근 최상의 칭찬이 될 수 있는데요, 그렇게 고백했을 때 그 동료가 ‘고마워, 솔직히 그 말 듣고 기분이 안 나쁘네. 하지만 나 역시도 괴로운 거 몰랐지?’ 풍으로 화답해주면 퍽퍽한 시멘트가루 일던 내 마음속은 한결 잠잠해질 테니깐요. 다만 저런 고백을 먼저 하려면 본인의 피해의식에 동반되던 자존심과 나르시시즘의 문제부터 해결해놓고 와야겠지요.
그런데 중증의 경우, 진짜 모차르트들이 살다 보면 간혹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너에게 질투 나.’ 얘기하면 눈 똥그랗게 뜨고 “무쉰?” 하고 답할 그들. 나 완전 바보 되는 거죠. 나는 이 악물고 똥줄 타는 심정으로 경쟁하는데, 아니 그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 넘어 비굴하게 그를 내 삶의 중심에 모셔놓고 사는데 정작 상대는 나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관심조차 없음을 알았을 때 혼자 뻘짓하는 것 같아 너무 기분 나쁩니다. 나는 악악거리면서 이 정도 겨우 이뤘는데 얘가 자칫 본 실력 드러내며 노력까지 한다면 나는 완전 백전백패일 것 같아 공포스럽기도 하고요.
이렇게 나를 못난이처럼 느끼게 만드는 정체 모를 자신감의 소유자들이 가끔 있긴 있습디다. 그들이 가진 천연의 자신감은 나르시시즘을 음흉하게 숨기고 살아야만 하는 소심한 이들의 골을 제대로 지르게 되지요. 마치 집도 부자고 반에서 1등 하며 다 퍼주는 반장인 나는 제쳐두고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가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 아이한테 향하고 있을 때 느끼는 속상함. 상대가 여유롭고 자유로운 영혼처럼 굴수록 더 나는 움츠러들게 되고요. 살리에리는 그렇게 모차르트의 과다한 자기긍정의 아우라를 만나면 자폭하게 됩니다.
혹자는 라이벌에 대한 질투심이 자신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질투를 자신의 성장을 위해 쓸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대개 같은 주파수 내에 있는 경쟁을 말합니다. 선의의 경쟁(그런 게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을 하고 싶다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노려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 동료는 객관적으로 잘나가고 있는 나에게 전혀 질투를 안 해주고 있잖아요. 무시당하고 있는 거잖아요. 모차르트는 결코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 같은 거 안 하잖아요. 지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쿨하지 못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기요, 저마다 일하는 스타일, 세상을 헤쳐나가는 스타일이 그냥 다른 거예요. 가령 나는 몇날 며칠 밤샘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치고 옆의 누구는 팽팽 놀다가 시험 쳤는데 거의 나만큼의 점수를 받아내면 열 받겠지만 나에게는 그 노력들이 필요하고 익숙하고 공정한 겁니다. 못난이병이 아니라 내게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질투가 나의 힘과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있는 것뿐입니다. 살리에리들이 직장에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고 종종 더 오래 조직생활에서 버티는 이유는 단순히 ‘결과론적’으로가 아니라 그 긴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들들 볶고 자학한 대가입니다. 경쟁은 다른 살리에리들과 하고 형언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모차르트들은 가급적 내버려두고 멀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난 나대로 살리에리의 길을 가면 되는 겁니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생겨먹은 게 그런 걸 어떡하냐고요. 살리에리가 뭐가 어디가 어때서. 나는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밖에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란 말입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 직장 상사들 눈에는 누가 뭐래도 ‘결과’를 안겨다주는 직원이 예쁜 법입니다. 대체 언제부터 직장생활이 일을 즐기는 것이고 한없이 여유로울 수가 있는 것이었는지 전 여태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림자와 싸우는 듯한 헛주먹질 게임에서 질 것 같으면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그 박스에서 먼저 털고 나와요. 더 바짝 이 악물고 어서 먼저 그 동료를 제치고 승진하시기 바랍니다. ‘선의의 경쟁’ 따위가 뭐래.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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