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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알려준 곱창

등록 2010-11-25 11:00수정 2010-11-29 14:19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음음! 맛있네”, “양이랑 대창 좋아해서 자주 다녔는데 이 집 정말 맛있다.” 시끌벅적한 곱창집 한 귀퉁이에서 터지는 탄성이다. 남자 후배 ㅇ과 남자 선배 ㅊ은 감탄사를 질러댔다. 이들이 괴성을 터뜨릴 때 여자 후배 ㄱ과 ㅁ은 아무 말도 없다. 자리를 떠날 때까지 조용하다.

양이나 대창, 곱창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일까? 이곳을 추천해준 내 친구도 남자다. 그는 내 또래에서 보기 드물게 180㎝가 넘는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이였다. 스마트하기까지 했다. 그와 나와의 인연은 대학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학교 학생도, 그 흔한 연합서클 친구도 아니었다. 어쩌다 알게 된 사이지만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다. 희한한 것은 만나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저 전화로 안부 정도만 묻는 사이다. 어찌 보면 소원한 관계인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경상도 사투리는 정겹다. 금세 세상살이 빗장을 풀게 한다.

그 남자가 알려준 곱창
그 남자가 알려준 곱창
긴 세월 우정을 지켜준 것은 그에 대한 두가지 기억 때문이다. 하나는 미팅이다. 우리는 주선자였다. 죽 같은 옥수수 수프가 나오고 동그랑땡처럼 무친 고깃덩어리가 양식이랍시고 나오던 시절에 어수룩해 보이는 남녀를 이어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칼질’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 사이에서 광대짓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임무를 완수하고 나왔을 때 뿌듯함이 기억에 있다. 두번째 기억은 그의 여자친구들이었다. 그는 철학이 분명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처자들과 사랑을 했다. 좋아 보였다. 마른 체형, 큼직한 눈, 긴 생머리, 청순가련을 넘어 청승미련해 보이는 여자들만 죽도록 쫓아다니는 또래의 남학생들보다 멋져 보였다.

이제 그는 나의 중요한 맛집 취재원이다. “이 집 진짜 맛있데이. 함 가봐라~. 니 팔자가 상팔자다.” 그가 알려준 ‘신당양곱창’은 1990년부터 신당동에 자리 잡고 있던 맛집이다. 올해 여의도로 이사를 왔다. 한우의 양과 대창, 곱창이 이 집의 메뉴다. 양은 소의 위다. 주인 정주왕(60)씨는 “우리 집 양은 소를 100마리 잡았을 때 5마리 정도만 나오는 두꺼운 거야”라고 말한다. 아침마다 마장동에서 받아온 양을 정씨가 직접 손질을 한다. 마치 초밥을 빚듯 찬물에 손을 담가 체온이 고기에 전달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벗긴다.

정씨는 “니, 함 묵어봐라” 하고 익히지 않은 양을 소금과 함께 내온다. “양을 회로 주는 데 우리 집밖에 없을끼다. 이래 자신있는기다.” 차림표에는 없지만 손님이 주문하면 냉큼 잘라 내온다고 한다. 양은 오래 구울수록 질겨진다. 살짝 익혀 먹어야 부드러움이 살아 있다. 소 1마리를 잡으면 약 12㎏의 곱창과 3㎏의 대창이 나왔다고 한다. 양은 더 적다. 부산물은 노폐물이 많아서 잡자마자 빨리 먹을수록 좋다.

인간은 참 징그러운 동물이다. ‘살아 있는 고기 통조림’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를 정말 아낌없이 먹는다.

‘신당양곱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02-780-9454.

특양 150g 2만5000원, 대창, 곱창 150g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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