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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이름으로 강요는 그만!

등록 2010-12-02 14:37수정 2010-12-04 17:44

사랑이란 이름으로 강요는 그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강요는 그만!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믿음 주지 못하는 남친과 결혼하는 게 맞을까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에 재직중인 서른한 살 미혼 여성입니다. 회사는 연봉은 많으나 너무 힘들고, 출산 후엔 다니기 힘들어 현실적으로 5년 정도 더 다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겐 6년 동안 만나온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결혼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평범한 중소기업 직장인인 그는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어서인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결혼을 미룹니다. 결혼을 바라는 저도 걱정이 없진 않습니다. 수입이 월등히 많은 제가 결혼해서도 주 수입원이 되는 건 아닌가 두렵습니다. 제가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걱정하면 남자친구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무능력함을 성토하는 걸로 받아들여 자존심 상해합니다. 대화가 불가능해요. 미안해하면서도 네가 정 힘들면 너의 길 가란 식으로 대꾸해서 저를 돌게 하기도 합니다. 능력만 따졌다면 제가 여태 이 남자를 만나지도 않았을 텐데요.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건 자신감과 추진력 없는 모습입니다. 너의 능력적인 부분에 대한 안심과 믿음을 내게 심어달라는 의사표현과 구체적인 결혼 계획은 너의 부모님과 상의해서 진지하게 준비해달라는 마음을 어떻게 제시해야 할까요? 그가 먼저 좀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남자로 만드는 방법 좀 없을까요? 사랑해도 눈앞에 어두운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면 지금 멈춰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같이 노력해봐야 하는 건지 답답합니다.

A 흔히들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 여자 팔자가 바뀐다고 하지만, 주로 여자들 스스로 결혼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남편 따라 바뀌게끔’ 허락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심하면 결혼이 인생의 종착역 같은 것이 되어 결혼 이후의 라이프스타일 선택에 대한 사고가 멈추는 거지요. 그러니 인생 최대의 쇼핑, 아파트 살 때처럼 투자가치 따지고 싹수를 예측해보기도 합니다. 말로 번역하면 ‘이 남자가 나를 과연 평생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결혼이 여자에게 의존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 쉬울 때, 남자에겐 그 무게만큼 자립과 책임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여자를 사랑해서 어떻게든 빨리 결혼하기보다 내가 결혼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에, 때마침 내가 꾸릴 그 가정에 걸맞을 아내감이 보이면 청혼을 하는 거지요. 여기서 그의 ‘가정’이란 ‘내가 안심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고 나를 쉬게 할 수 있는 장소’.

쳇, 그 돈 벌어 언제 자립해, 싶겠죠. 어서 엄마아빠 모시고 와서 내 막힌 인생 뻥 뚫어, 싶겠죠. 그럴수록 남자 마음은 결혼에서 멀어집니다. 이 여자랑 결혼하면 늘 빚진 느낌이 들 것 같아 꿈꿔온 이상적인 가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남자는 자기 마음이 힘들고 약해졌을 때 티 안 나게 뒤에서 밀어주거나 앞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여자에게 특별함을 느끼는데, 조교가 ‘거 동작 봐라, 빨리빨리 못 올라와!’라고 호통치면, ‘내 인생 대체 어떻게 할 건데’라고 다그치면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라고 말할 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누가 억지로 6년간 가둬놓고 사귀었나요.

중소기업 입사 때부터 능력 부분의 상대적 부족함은 이미 예측을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때는 사랑에 눈멀었다 하고 지금 와서 새로이 심기일전, 이상적인 10주년, 20주년 계획서를 가지고 협상하려 하고 있습니다. 결혼할 때 모든 것이 이상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나는 많은 거 안 바란다 해도 상대에겐 불가능한 미션일 수도)으로 연인을 시험하려 든다면 그가 너무 불쌍합니다. 하기야 나를 가지려면 이 정도는 돼야 돼, 라고 미션을 던져보지만 정작 그는 덥석 물 생각이 없이 꾸물거리니 그 앞에선 바보 된 당신이 더 불쌍해 보입니다만. 그러면서 은연중에 내비치는 메시지는 ‘사실 난 너 없이도 꽤 잘 살 수 있는 여자야’이니 피차간에 헷갈리지요.

정말 어떡할까요. 대기업 모범생처럼 ‘슈드’(should)만을 외치는 것을 멈추고 모든 사회적 명함을 뒤로한 채 나의 ‘원트’(want)를 생각해 봐야죠. 사랑해도 눈앞에 어두운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면 지금 멈춰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같이 노력해보아야 하는 건지는 본인이 지금 멈추고 싶은지, 같이 노력해보고 싶은지에 대한 결단에서 그 답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난 나밖에 변화시키지 못하니까. 결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변화시켜선 안 되니깐.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남자친구의 ‘네가 힘들면 너의 길을 가라’는 말은 연인으로서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본질적으로 너무 맞는 말이기에 더더욱 듣는 사람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안심과 믿음을 줌으로써 나를 힘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고, 연인이라면 당연히 이수해야 하는 과제는 아닙니다. 남자가 만약 ‘너도 나를 사랑하고 우리 가정을 생각한다면 돈 잘 버는 네가 계속 일을 같이 해줘야지!’라는 것과 같거든요. 뭐 어차피 부연설명과 합리화가 많아지고 상대에 대한 강요와 압박이 엉키면 결혼까지 가기도 힘들지만. 그러니 내가 이 불안정한 남자랑 잘해나갈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은 당신만의 감정이 아님을 직시하시고, 과연 지난 6년 세월이 아깝고 앞으로 또 새롭게 연애할 일이 더 지긋지긋할지, 결혼해서 ‘돈돈돈’ 하는 게 더 지긋지긋할지는 본인 취향껏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새 남자랑 연애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결혼해서 ‘돈돈돈’ 안 해도 꽤 살 만해요.


PS. 난 여자친구보다 못 버는 것에 대해 전혀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 남자가 더 이상할 것 같아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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