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한달 전이다. 프랑스 보졸레 지방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리옹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날 우리 일행은 ‘퍼마셨다’. 무릇 사람은 ‘마지막’에 열정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연인은 이별하는 마지막 밤에 뿜어낼 수 있는 모든 땀을 쏟아내고, 사진가는 마지막 슈팅에 필름을 아끼지 않는다.
너무 조용해서 까치발 걸음도 송구한 보졸레 시골의 마지막 밤, ㅊ에게 한 잔, 2명의 ㅇ에게 한 잔씩, ㄱ에게 한 잔, 넘치는 붉은 술잔 사이로 손바닥만한 별들이 떨어졌다. 다음날이 문제였다. 프랑스 비행기는 술잔처럼 출렁거렸다. 위장에서 튀어나갈 때만 노리고 있는 ‘그것들’이 기회를 잡았다. 비행기의 흔들림이 기폭제가 되었다. 유일한 희망은 화장실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광저우 스타디움을 달리듯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어여쁜 프랑스 승무원이 완강히 붙잡는 것이 아닌가! 자리로 돌아가라고! 이때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욱! 욱! 욱! 데인저러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위험’을 감지한 승무원은 화장실을 열어주었다. 비행기는 서서히 착륙을 하고 있었다. 쿨쿨 자고 있었던 ㅊ과 ㅇ에게 구조요청은 할 수 없었다. 술꾼의 자존심이다.
한국에 돌아와 프랑스에서 통역을 맡았던 이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모였다. 나의 무용담은 좌중을 압도했다. 어머니의 인사가 겨우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내 딸은 프랑스에서 잘 지내요?” 딸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어머니는 닭볶음탕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그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짜고 맵고 인공조미료 향이 났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닭요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조선시대 장계향 선생이 쓴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다양한 닭요리들이 등장한다. 영계를 찜으로 요리한 ‘연계증’은 된장과 밀가루를 활용해서 만드는 맛난 찜요리다. ‘칠계향’, ‘승가기’, ‘연계적’ 등 이름도 생소한 닭요리들이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닭은 먹을거리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 참으로 유용한 식재료였다. ㅇ과 ㄱ은 모두 요리와 관계된 일을 한다. 자연스럽게 프랑스에서 맛본 닭요리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버섯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사진) 버터를 넣고 닭고기를 굽다가 버섯, 양파, 으깬 통마늘, 화이트와인을 넣어 졸이는 요리다. 마지막에 걸쭉한 크림을 뿌려 먹는다.
당시 ㅊ과 2명의 ㅇ은 이 요리를 해준 멋진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발레트를 훔쳐보면서 함께 갔던 요리사 ㄱ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강권했다. 눌러앉아 그와 백년해로하면서 요리를 배우라고! 세계적인 요리사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농담을 던졌더랬다.
그날 밤, 서울 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그날 밤처럼 흥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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