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나의 네번째 책이자, 첫번째 성장소설 <엘자의 하인>이 나왔다. 아름다운 혼혈소녀 엘자를 사랑하는 순진한 시골 소년 하인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대개의 성장소설이 작가의 경험에서 탄생하듯 나 역시 주인공 하인에게 내 어린 시절을 투영했다. 귀에 얼음이 박이도록 썰매를 타고, 친구를 구워삶아 8비트 퍼스널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연습장에 팝송 가사를 한글로 옮겨 적으며 시간 귀한 줄 모르고 흥청거리던 선머슴 같은 내가 소설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고 보니 내 소설들의 주인공은 대개 남자였다. 나는 머리도 길고, 주기적으로 손톱에 매니큐어도 칠하고, 김치도 잘 담그는데 왜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나사 빠진 어리바리한 캐릭터의 남자애들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며칠 전 ‘작가의 말’을 쓰며 옛날 앨범을 뒤적이다, 그 해답을 찾아냈다.
우리집은 포도밭을 했다. 부모님과 네 분의 고모, 조부모님, 그리고 과수원 일을 돕는 일꾼들까지 집안은 늘 어른들로 북적거렸지만, 아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일손이 모자라다 보니 긴 머리를 땋고 묶는 일도 번거로워, 그 시절의 나는 늘 짧은 단발머리였다. 또 예쁘기는 하지만 거추장스럽고 때가 타기 쉬운 밝은색 원피스 대신 늘 단색의 운동복에 고무슬리퍼를 끌고 코를 댓발씩 흘리고 다녔다. 때 낀 손톱에 꾀죄죄한 옷차림, 지저분한 얼굴의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 같다. 앨범 속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동네 오빠들과 딱지를 겨루고 있는 모습, 사내아이들과 웃통을 벗어젖히고 농수로를 기어다니며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 얼굴에 온통 그을음을 묻히고 시커멓게 탄 콩을 주워 먹는 모습들뿐이다.
다섯살 아들은 외할머니, 외증조할머니, 두명의 이모들 틈에서 자라고 있다. 가끔 녀석의 손톱엔 빨강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멋내기를 좋아해서 하루에도 수십번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듯, 언젠가 내 아들 앞에 운명의 그녀가 나타나면 시키지 않아도 아세톤을 찾을 것이다. 그게 그리 먼 훗날의 일이 아닐까봐 겁은 좀 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모두 한때 그랬지 않나.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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