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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녹는 육우의 ‘사는 꼴’

등록 2010-12-09 11:41

살살 녹는 육우의 ‘사는 꼴’. 사진 박미향 기자
살살 녹는 육우의 ‘사는 꼴’.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육우는 억울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식탁에서 홀대받기 시작했다.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이 일면서 마치 식용으로 사육된 얼룩소(홀스타인종)는 먹을거리가 못 된다는 잘못된 편견이 생겼다. 육우는 얼룩소 중에서 거세한 수소를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먹을거리로 운명 지어진 놈이다. 얼룩소 암소가 우유와 송아지를 생산하는 동안 수소는 우리 식탁으로 향한다.

지난 10월 육우 생산 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원 없이 얼룩소들을 구경할 수 있는 찬스였다. 사는 꼴을 보면 앞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관악산 아래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결국 수녀원에 들어간 내 친구 ㅎ의 ‘사는 꼴’은 책상 1개와 단출한 살림살이가 다였다. 단아한 자취방은 이미 수도자의 길을 예고하고 있었다.

육우는 어떨까? ‘우리보리소 안성사업단㈜’과 육우 사육농장인 ‘가율농장’은 단정했다. 심지어 소심(?)을 맑고 건강하게 하기 위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소들이라! 육성우 농장에는 이제 겨우 초유를 뗀 얼룩소들이 있었다. 태어난 지 3개월이 되는 소는 곧 거세될 예정이라고 했다.

가율농장의 소들은 웃긴 녀석들이었다. 심드렁한 하품을 뿜으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아닌가! 커다란 소가 나란히 서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꼴이라니,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여기에는 곧 식탁으로 향할 놈들이 많았다. 출하되기 직전 육우의 몸무게는 750㎏이다. 사료는 옥수수가 25% 함유된 펠릿(pellet, 여러 가지 원료사료를 작게 뭉쳐서 만든 것)사료와 조사료(각종 풀 종류)라고 한다. 조원모(50)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낙농과 연구관은 마블링 때문에 곡물을 안 먹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풀만 먹은 놈은 우리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마블링이 안 나와요. 성장도 늦고 비육기간도 길어지죠. 농가의 생산성도 떨어집니다.”

마블링에 대한 집착만 버려도 소들의 먹을거리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한우도 같은 사료를 먹는다고 한다. 육우는 한우와 같은 등급제를 적용한다. 그는 육우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세를 하면 순해지고 지방의 함량이 높아져서 매우 부드럽습니다.” “물론 등급에 따라 정도는 다르다”는 보충설명도 덧붙였다. 그날 조원모씨와 밥을 먹으면서 그의 소 사랑을 전해 들었다. 그는 20년 넘게 소와 함께 살아왔다. “지방을 돌아다니죠. 농장주들의 시름도 들어주고 대책도 조언하고, 우리 육우 안전하게 관리해서 맛이나 질이 결코 한우 못지않아요.” 1등급 육우의 맛은 부위별로 약간씩 질이 달랐지만 부드러웠다. 씹는 식감은 덜하지만 그의 말대로 지방의 분포가 많아서인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살핀 놈들’을 저녁 식탁에서 바로 먹어치우다니,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라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크고 순한 눈동자들이 아른거렸다. (육우전문식당 ‘포도원 육우’ 043-234-6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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