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눈치보지 않고 내 감정 말하기 너무 어려워요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최근에 대학 때부터 친했던 한 친구에게 그간의 울분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원인 하나는 늘 돋보이고 싶어하고 질투도 많고 저를 막 대하는 성격에 질린 것이고, 원인 둘은 그런 불만을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참고 쌓아둔 저의 성격에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무시하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그저 ‘아, 그래?’ 식으로 쿨한 척 대충 웃어넘겼지만 속은 썩고 있었죠. 왜 내가 아무 대꾸도 못했을까, 열 받아서 잠도 못 자고요. 하지만 이젠 마음속에 싫은 감정을 꼭꼭 숨겨둔 채 거짓으로 만나는 것도 질려서 연락을 피했고 화난 게 있느냐고 물어오는 그 애한테 결국 전화를 걸어 저의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전화를 걸기 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저의 격한 감정에 비해 그 아이는 의외로 매우 차분히 받더군요. 왜 진작에 이야기 안 했느냐고, 몰랐다고, 알겠다고 하더군요. 근데 이 비참한 기분은 뭔가요? 전화를 끊고 나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혼자 담아두고 혼자 절교선언한 것 같아 참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다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바로 내 마음을 잘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래도 괜찮다’라는 말이 듣고 싶어 이 글을 쓰나 봐요. 화내고 싶었을 때 상대 눈치 보며 괜찮은 척했다가 더 큰 자기혐오에 빠졌던 저, 이제는 이렇게 화를 내도 되는 거지요?
A ‘나’를 놔버리면 짜릿할 수도…
응, 괜찮아요. 어차피 제자리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나도 ‘나쁜 의도 없이 가볍게 얘기한 건데 상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히는 짓’은 나쁘다고 생각해요. ‘내가 뭘?’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그랬다면 더더욱 악질이고요. 그런 얼굴 앞에서 화내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특히나 친했던 관계라면 더더욱 당하는 와중에 센서가 마비되어 나중에 내가 화났다는 사실을 알 정돈데. 나중에야 제정신 들어 얘기하면 타이밍과 핀트는 또 어찌나 안 맞던지. 그래도, 반드시, 나중에라도 그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고 봐요. 면전에 대고 악악거려 분위기 깨든 간에, 뒷북쳐서 ‘왜 이제 와서…?’라며 바보 취급 당해도, 절교하게 된다고 해도, ‘나는 상처받았다’라고 전달하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좋아했던 부분도 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혼자 감정노동하고 자폭한 것처럼 느껴지는 자기혐오감의 문제는 어차피 표현의 타이밍과 수위와 방식이 적절하게 조절되기까지(뭐 조절이 된다면 분노도 아닐 테지만) 거쳐가야 하는 과정. 더욱이 이 갈등관계를 감당하든 극복하든 마감하든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 그 ‘훗배앓이’의 무게감이란 원래가 그만큼 힘이 든 겁니다. 그간 비굴하게 웃는 낯으로 대응하며 참아온 것이 고통이라 생각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피곤해질 갈등관계를 피하기 위한 자기보호 기제가 작용한 거였다는 거죠. 충돌 당시의 화끈한 긴장감만으로 끝날 게 아니라 그 후에도 가령 반론 먹고, 복수당하고 어쩌면 격한 소통을 통한 극적인 화해 등 참으로 스트레스 받으며 풀어야 할 후속조처 인간관계가 원래 남아 있다는 것이니까요. 이러나저러나 인간관계 ‘뒷감당’ 문제는 절대적인 시간경과를 필요로 하는 거랍니다. 쿨하게 물러난 그 아이는 나한테 어떻게 다시 나올 것이냐, 두근두근두근, 내 마음의 연평도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향후에도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 주지 않게 하려면? 일단 대놓고 막 대하는 인간들은 가급적 상종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막 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난감하다는 거. 칭찬인 듯하면서 사실 속뜻은 비하이거나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실은 냉소적이고, 친구라면서 어떻게 하면 기선 제압해서 우위에 설까, 잔머리 굴리는 게 보이면 정말 기분 한없이 더럽고 혼란스럽죠. 대개 이렇게 ‘애매하게’ 긁을 때가 더 심기가 불편해지는 법! 저도 이 문제로 참 마음 상해보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마음 상할 건 없다, 왜냐하면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문제니까. 즉, 그들의 자아존중감이 불안정해서 속이 불편하니까 곁에 있는 만만해 보이는 상대의 속을 더불어 불편하게 긁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그런데 왜 내가 몸 갖다 대줘야 하는데? 그러니까 조합이요, ‘자기 내면 문제를 핸들링 못해 타인에 대한 음험한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그 상대’ + ‘자신의 감정을 너무 의식하는 습성을 가진 자의식 과다인 나’= 팡! 사고가 나는 겁니다. 이때 지혜로운 깨달음과 소통과 변화가 없다면 ‘그 상대’는 계속 무의식중에 만만한 표적을 바꿔가고 부딪히며 감정을 소모해댈 것이고, ‘나’는 점점 더 자의식 과잉이 된 나를 의식하게 돼 더더욱 자의식 과다의 악순환이 되는 거지요.
화를 내든, 울부짖든, 얘기하기 잘한 겁니다. 어쩌면 상대는 순순히 바로 사과를 할 수도 있고요, 당장은 서로 화내더라도 나중에 웃으면서 서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에 상처받은 것 때문에 내 상상력이 불안감을 더 키우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막상 사람하고 대놓고 부딪히고 싸우는 게 의외로 논리적이고 깔끔할 수도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나저나 지금 이 얘기를 해버리면 상대를 상처 입히고 또 그것이 나한테 실질적으로 안 좋게 작용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말을 해버릴 때, 솔직히 그 ‘나를 놔버리는’ 기분이 약간 짜릿하지 않았나요? 자, 새해에도 할 말은 하고 삽시다. 올해 상담은 여기까지.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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