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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의 남자에게만 끌리는데 어떡하죠?

등록 2011-01-20 14:20수정 2011-01-20 17:36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에게만 끌리는데 어떡하죠?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에게만 끌리는데 어떡하죠?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올해 27살이 된 이공계열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큰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남자를 보는 눈이 전혀 없다는 건데요. 어쩐 일인지 저는 함께할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 남자들에게만 마음이 끌립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공부라고는 하지 않고 술자리를 매우 즐기며, 군대 다녀와서도 피시(PC)방, 당구장을 들락거리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철없는 학생들이었어요. 고로 얼마 가지 않아 서로 이해 못하고 헤어졌지요. 최근에는 제가 다니는 재즈댄스 학원의 남자 선생님에게 가슴이 설렙니다. 턱수염을 기른 자유로운 예술가의 느낌, 그리고 춤추는 모습에 가슴이 뜁니다. 몇번 술자리도 가졌는데 학생 때 가출 경험, 백댄서 경험, 소년원 경험 등 드라마 속 얘기 같은 것들만 늘어놓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와, 나랑 정말 다르다, 이 사람하고 친해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러자니 이제껏 제가 했던 연애 같지 않던 연애들만 떠오르네요. 사실 그간 저와 공통관심사가 있고 대화도 잘 통하고 성격도 잘 맞는 남자들도 저에게 몇몇 고백을 해왔었어요. 저와 비슷하게 조금 성실한 타입의 남자들이었죠. 그런데 그때마다 그들이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거절했지 뭐예요. 올해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이젠 좀 미래를 함께할 괜찮은 남자를 만나라고 친구들이 충고하는데 엉뚱한 곳으로만 뛰어가고 있는 제 가슴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이상한 심리는 대체 뭔가요. 이게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건가요? 이러다 결혼도 못하겠습니다.

A 그런 감정 애써 거부할 필요 없어요

‘연애 같지 않던 연애’라고요! 아휴, 결혼 상대로는 최악인 ‘자유영혼’ 남자들하고의 연애가 얼마나 스릴 넘치고 재미있는데요(특히 초기에). 내 가슴 찢어지고, 눈물 질질 짜고, 잠 못 이루는 것도 다 연애의 맛이고요, 저런 비현실적인 남자분들이 또 얼마나 매력적인데요(특히 초기에). 담뱃불 붙일 때의 그 애잔한 표정, 아흐. 어쨌거나 앞으로는 그 고약한 취향 좀 버리고 멀쩡한 남자 좋아하고 싶다고요. 그렇죠. 어른스럽고 자상하고 여자 마음도 잘 이해해주고 경제력도 있고 보기에도 나쁘지 않고 머리도 좋고 부모님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남자를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려면 왜 굳이 저런 타입들을 좋아했는지 알아볼까요? 철없고 한심해 뵈는 남자들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대개 똑같이 철없고 한심해 뵈는 여자들이 아니라 의외로 모범적이고 성실하고 똑똑한 여자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착하기까지 해. 쓸데없이. 아, 그리고 이런 특징들도.

첫째, ‘운명’을 믿어요. 그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고 믿습니다. 그 남자들이 처음 능숙하게 흩날리는 드라마틱한 아우라에 운명을 느끼기도 하고 차후 이 남자에게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 보일수록 ‘이 남자에겐 나밖에 없어. 이 남자에겐 내가 필요해. 내가 없으면 이 남자는 망할 거야’라고 스스로 마리아님이 되십니다. 둘째, 그 남자가 나를 위해 갱생할 수 있다고 믿어요. 도중부터 이 남자의 나쁜 습성들을 알게 되면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바뀔 수 있지 않겠니” “이렇게 게으른 네가 싫어”라며 거리를 두고 협박을 해본들, 그 남자가 정신 차리고 변화할 확률은 지극히 적은데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 관계는 특별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인내심 강한 모범생이기에 ‘내가 이 사람을 개선시켜볼 거야’라는 희망의 끈을 쉽게 놓지 않습니다. 연애에서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노력’을 정말 성심성의껏 하는 거지요. 셋째, 그의 단점을 장점이라고 착각해요. 머리가 좋으니 남자친구의 언동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과 남자친구 변호 및 합리화에 어찌 그리 능숙하신지. 주로 ‘남자답다’라는 표현도 즐겨 사용하지요. 그런데 난감한 것은 속수무책 남자친구인 것 같아도 이따금 조금 나아지는 듯할 때가 있거든요(가령 새해 초반에). 그러면 마치 아기가 뒤집는 걸 처음 목격한 엄마처럼 그 감동이 워낙 커서 그를 키웠다는 묘한 희열을 느끼고 새로운 사명감을 불태우게 됩니다. 그런 감동 드라마를 느끼기 위해 그녀들은 자신의 희생적인 사랑에 도취되어 몸과 마음을 바칩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죠. 나중에 가서야 ‘내가 그땐 단단히 돌았었구나’ 싶을 뿐.

한데 전 사실 그 한심하고 철없어 뵈는 사랑스런 그 남자들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불량식품들은 그들 나름의 존재가치가 있고요, 그 한심하기 짝이 없던 남자들도 언젠가는 장차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남편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아깝게 놓친 그 괜찮은 남자분들도,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하고 성실하다 해도 그냥 단순히 그걸 넘을 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소리거든요.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진짜 문제는 이런 남자들과 사귈 때, 여자들은 대개 그 남자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개선시키려고, 즉 내 입맛에 맞는, 혹은 모범적 결혼에 맞는 남자로 변화시키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헛쓰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그 남자 자체가 무모하다기보다는 그녀들의 노력들이 무모하다는 겁니다. 자칫 무리하고 싶고 애쓰고 싶고 노력하고 싶은 열망이 찾아오면 그건 차라리 다른 남자 찾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그 다른 남자를 찾는 데 쓰겠다고 염두에 두면 되는 거지, 전혀 급할 것도 없고 처음부터 감정을 애써 거부할 것도 없어요. 불량식품도 그걸 감당할 체력이 되니까 먹을 수 있는 거지, 배탈 몇번 제대로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유기농 현미밥 찾게 되어 있어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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