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미’ 알아주길 바라기보다는…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안경 벗자 바뀐 주변 태도에 환멸감 느껴요
20대 여대생인 저는 중·고교 시절 인간관계로 인해 괴로웠던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왜 나는 쟤처럼 친구가 많지 않지? 왜 나는 이렇게나 힘들지? 등. 그런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상대를 탓하기보다 내 쪽의 문제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무엇보다도 저는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꾸미고 치장하는 걸 보는 게 늘 불편했습니다. 스스로가 그런 세계에서 완전히 박탈당한 존재라고 느꼈던 적이 많았거든요. 눈이 나빠지고 안경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단순히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내가 별로인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거울을 보는 것도 달갑지가 않았죠. 그런데 요새 이제야 가끔 렌즈를 착용해보는데 안경을 쓴 것보다 벗은 게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스스로도 안경 벗은 내가 정말 매력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몇몇 사람들의 태도가 괴롭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들으려는데 곱게 차린 여자들한테만 관심 보이는 교수님들도 상처가 되지만, 간혹 안경을 벗고 온 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안경을 쓰는 동안 제가 정말 무진 애를 썼던 건 아무 쓸모도 없었나 싶고 안경을 낀 제게 냉랭했던 사람들이 단지 ‘안경을 끼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도가 바뀌는 걸 보면 정말 환멸이 듭니다. 안경을 쓴 나는 그럼 영영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인가요. 제 고뇌(?)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제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안경을 벗은 모습이 스스로 흡족했다니 무척 좋은 얘깁니다. 그 충족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외모의 긍정적인 변화는 그 사람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마련. 그중 가장 큰 기쁨은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멋진 취미가 생긴다는 것이죠. 네, 아름다움의 추구는 인간의 삶에 윤기를 더해주는 멋진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경을 쓴 나는 영영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인가,라며 과거의 분을 삭이지 못해 괴로워하지만, 과거에 ‘안경을 낀 나’ 역시도 ‘안경을 안 낀 너희들’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은 건 아니고요?
더 아름다워지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은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다만 요새는 ‘외적 아름다움 대 내적 아름다움’의 균형이 한결 전자에 치중하게 되고, 아름다움의 추구가 평생을 걸쳐서 쌓아가는 목적이 아닌 당장의 이익 혹은 생존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처럼 되어버려서 아마 너무 질려버려서 그런 것 같네요. 바로 옆에서 그 ‘예쁘장함’이 줄 수 있는 여러 새치기나 무임승차 같은 트릭들을 목격하면서 좌절하고 또 지금은 직접 떠밀려서 그런 달콤한 유혹에 빠질 것만 같아 어쩔 줄 모르는 거지요. 그 천박한 외모지상주의의 세계에 빠져 변절되면서 나조차도 과거의 나를 부정하게 될까 봐 죄책감도 들고요. 그래서 여전히 외모에 치중하는 주변사람들에게 눈 부릅뜨고 힘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이중 잣대에 너무 힘들어할 것 없어요. 왜냐하면 그거 엄밀히 말해 이중 잣대가 아니니까. 안경에 가렸던, 이젠 바깥으로 드러난 당신의 두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를 믿어주라는 겁니다. 지금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 아름다움의 개념이나 내용이나 샘플들이 당신의 눈에 솔직히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런 건 부러워할 필요도 참고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선 아름다움의 롤모델은 그리 다양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으니까요. 남들이 예쁘다 해도 내가 보기에 별로면 별로인 거지요. 하지만 자신이 안경을 벗었을 때 느꼈던 내 모습에서 보인 그 아름다움은 쑥스러울지는 몰라도 바로 ‘리얼’입니다.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한 그 기점은 그래서 더더욱 소중히 기억하고 되짚어봐야 하는 감촉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믿고 거기서부터 계속 자신에게 어울리는 그런 아름다움의 요소를 하나하나 즐거운 마음으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탑재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남들과 나를 차별시키는 아름다운 개성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 외모에 대한 고뇌, 혹은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 더 아름다워지거나, 아니면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으로 그만큼 채워주거나. 천박한 외모지상주의가 꼴사납다면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 매력을 솔선수범해서 주변에 전파해야지요.
그리고 예뻐진 내 모습에 확 달라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고요? 흠, 그런데 보기 좋은 외모나 매력적인 아우라가 줄 수 있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저평가하고 ‘난 나야. 난 내 식대로 할 거야. 네가 나의 숨겨진 매력을 진작에 알아봐줬어야지’ 하는 것은 희망사항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토록 친절하거나 세심하지가 못합니다. 사람들은 대신, 당신이 지적하듯, 얄팍하게도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을 매우 밝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 주변 인간들의 태도에 상처를 입었다고요. 흠, 하지만요, 안 그러기는 이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거라고요. 사람은 누구든 간에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고 흔들린다고요. 어쩔 수 없다고요. 그런데요, 다만 이런 건 있어요. 길을 지나다가 예쁜 꽃을 보면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이 안 볼 때 확 꺾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시들해지면 무참히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
임경선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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