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따윈 한입감…삼치 같은 친구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마포 남해바다, 제철 선어회 여기가 제맛
내 친구 ㅇ의 어린 시절 꿈은 역사의 현장을 놓치지 않는 사진가였다. 도로시아 랭처럼 이주농민들의 삶을 찍거나 루이스 하인처럼 거대한 공장에 갇힌 노동자를 찍거나 제임스 나트웨이처럼 폭탄 터지는 전쟁터를 누비는 것이었다. 낸 골딘처럼 자신의 삶 자체를 피사체 안에 던지는 것도 그의 꿈이었다. ㅇ의 그런 생각을 들을 때마다 배시시 웃곤 했다. 항상 위태로운 경계선에서 사는 듯한 모습과 다소 엉뚱하고 개그스러운 모습은 그런 무겁고 진지한 삶이 어울릴까 싶었다.
오래전 ㅇ이 한 외국계 통신사 사진기자 면접을 보고 왔다며 술 한잔 사라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웃고 있는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무용담을 듣고서야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날 그의 앞에는 영국인 지국장과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총괄 사진데스크의 목소리가 들리는 전화기가 있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잘 진행되었다고 ㅇ은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말미에 중요한 예상 문제가 나왔다. “북한 취재 갈 수 있느냐, 왜 그곳을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주 쉬운 문제였다. 남북관계는 늘 중요한 세계적인 이슈다. ㅇ은 속으로 ‘앗싸’ 외치면서 답을 하려는 순간 머릿속이 까맣게 변했다. 영어 울렁증이 몰려왔다. 콩글리시 대가였던 ㅇ은 얼굴을 붉히면서 이상한 영어를 했다. “이츠 마이 드림.”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고 지국장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번 시작된 울렁증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 질문은 “왜 우리 통신사에 들어오고 싶은가”였는데 머리는 이미 백지상태로 변해있었다. ㅇ은 순간 “이츠 마이 드림, 투”라고 답해버렸다. 순간 ‘빵’ 터졌다고 한다.
요즘 ㅇ이 나를 찾아오면 자주 데리고 가는 곳이 생겼다. ‘남해바다’이다. 여수가 고향인 주인 최문배(55)씨가 남해에서 잡은 생선을 비행기나 배로 가져와 요리한다. 제철생선이 차림표에 가득하다. ‘봄’ 하면 냉이나 달래 같은 봄나물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제철생선도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다. 봄에는 소라, 고둥, 홍합, 굴, 바지락, 피조개 등 조개류와 조기, 병어, 멸치, 삼치 같은 생선이 맛나다. 남해바다에는 보기 드물게 삼치회가 있다. 삼치는 주로 구이나 조림, 국으로 먹는 생선이다.
지방에서 삼치를 주문할 때는 살짝 억양과 용어를 바꿔야 한다. 전남에 가면 “고시 주쇼”, 통영에 가면 “망에 있는교” 해야 한다. 남해바다의 삼치회는 두께가 족히 1㎝는 되어 보인다. 최씨는 삼치회가 드문 이유는 4㎏ 이상 되는 횟감을 구하기가 어렵고 잡자마자 빨리 죽는 삼치의 특성상 숙성과정도 손이 많이 간다고 한다. 회 뜨는 데도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잘못 칼질하면 먹을 것이 별로 없다. 평소 미식가였던 최씨는 자신만의 삼치회 먹는 법을 개발했다. 김 위에 소스를 바른 삼치 조각을 올려놓고 묵은 김치, 고추, 마늘까지 얹어 먹는 것이다. 삼치회는 생선의 비늘이 조금 남아 있어 씹는 순간 딱딱한 식감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살은 약간 단단하게 식은 푸딩처럼 알싸한 찬 맛을 선사한다. 마지막에 고소한 호두의 맛이 감동을 주는데, 천천히 씹어 먹어야 느낄 수 있다. 이 집에는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코끼리조개도 있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ㅇ의 세상살이 얼굴 두꺼움은 남해바다의 팔딱팔딱 뛰는 신선한 생선을 닮았다.
남해바다/02-707-3101/삼치회 3만원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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