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주꾸미’ 파스타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끌리는 후배 ㅅ과 함께 ‘봄 주꾸미’ 파스타를
30대 초반의 ㅊ은 163㎝가 넘는 정갈한 키에 하얀 피부, 긴 생머리, 청순한 외모의 후배다. ㅊ과 동갑인 후배 ㅅ은 160㎝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통통한 볼살, 성격 좋아 보이는 외모다. 전자는 외모만 보자면 사랑을 12번도 더 했을 것 같고, 후자는 몇 번 했을까 싶다. 결과는? 전자는 지금까지 남자 손이라고는 대학 모꼬지에서 게임할 때 잡은 것이 전부고, 후자는 현재 4살 연하의 건장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는 남자’와 사귀고 있다. 둘의 큰 차이점은 뭘까? 사랑은 통념을 깨는 것, 세상 틀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상대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으로 꽃을 피운다.
ㅅ과 따스한 봄햇살이 비치는 레스토랑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작은 레스토랑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남자친구 잘 있어? 빨리 결혼해야지. 나이 차이도 있고. 요즘 괜찮은 남자는 독수리가 먹이 채가듯 처자들이 낚아챈다던데.” “한 3년은 더 연애하고 결혼하려구요.” 방긋 웃는 그의 미소에서는 자신감과 건강함이 묻어난다. 세상 일반론에 ㅅ은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당당한 기준과 활달한 믿음이 있다. 오라! 차이점은 이것이었다. ㅅ은 상대에 대한 넉넉함까지 보너스로 가지고 있었다!
ㅅ의 연애현장 목격담 하나. 연합동아리 체육대회가 예정한 시간이 한참 넘어 끝나자 ㅅ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달려갔다. 2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허투루 살지 않았다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ㅅ을 보자 기다림에 지쳐 주르륵 한 줄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늦은 여자친구를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화내지 않았다. ㅅ은 토닥거렸다. 사랑의 색깔은 여러 가지! ㅅ의 두꺼운 도화지처럼 얇은 듯 단단한 건강함과 웃음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ㅅ과 함께 간 이태원 레스토랑 ‘봄봄’(BOMBOMB)의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메뉴에는 없지만 오늘 주꾸미 좋은데요, 주꾸미파스타 어때요?” 주꾸미는 지금이 제철이다. 낙지와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어렵지만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맛이 있을 정도로 모양과 맛이 다르다. 낙지에 비해 다리는 짧지만 머리는 2~3배 크다. 비린내도 없어 볶음이나 구이, 찌개 등 여러 가지 요리에 쓰인다. 파스타에도 요긴한 재료가 된다. 스파게티 면에 숯가루가 뿌려진 듯한 ‘주꾸미파스타’가 ㅅ의 앞에 섰다. 면을 물들인 회색빛은 좌도 우도 아니다. 말려 있는 모양새는 영화 <판의 미로>다. 주꾸미 다리의 단단하게 선 돌기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탱탱한 면을 ㅅ은 쏙 당긴다. 무너지는 주꾸미는 ㅅ과 사랑을 시작한다.
우리는 안심스테이크도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요리학교를 나온 주인장의 솜씨답게 스테이크는 미국식이 아니었다. 너무 광활해서 삭막하고 쓰라린 미국 땅 같은 두툼한 고깃덩어리가 아니라는 말씀. “루콜라와 같이 드세요.” 콧방울 세게 킁킁거리게 만드는 루콜라는 다정하게 우리를 맞는다. ㅅ은 잘 익은 스테이크를 쓱쓱 썰어 남자친구를 포근하게 안아주듯이 루콜라로 쌌다. 한 입 ‘쏙’ 검붉게 뿌려진 소스는 입맞춤 뒤 심장으로 떨어지는 떨림 같다.
꽃피는 봄이다.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사랑을 나누는 후배들의 소곤거림이 들린다. 알랭 드 보통처럼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외치지 않아도 ㅅ처럼 당당한 미소를 날리면 ㅊ도 핑크빛이 될 수 있으리라! (‘봄봄’ 02-794-8770)
박미향 기자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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