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덕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밤 10시. 레스토랑에는 손님들이 가득하다. 불판이 훤히 보이는 주방은 소란스럽다. 요리사들이 지글지글 볶고 굽는 모습이 <사랑의 레시피>다. “아! 지금은 바빠서 조금 한가해지면 올게요.” 프렌치 레스토랑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 이유석(31)씨가 한마디 남기고 사라진다. 이씨를 처음 안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맛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요리사들을 만나게 된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 서울시내를 이 잡듯 뒤지면서 터를 알아보고 있었다. “레스토랑 자리, 이유석 셰프한테 물어봐요.” 부동산업자들이 오죽하면 이랬을까.
11시가 넘어서야 그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레스토랑을 열고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요리’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어떤 아르바이트생은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고 문자로 알바비 보내달라고 계좌번호만 보내는 거예요.” 종업원 고용은 레스토랑 업주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다. “미국인들이 시비를 걸어 혼난 적도 있었어요.” 루이쌍끄의 이름 앞에는 ‘개스트로 펍’(gastro pub)이 붙는다. ‘개스트로 펍’은 펍 같은 가벼운 분위기에 ‘파인 다이닝’(fine dining·코스요리에 와인리스트까지 갖춘 정찬) 개념을 접목한 레스토랑이다. “펍은 시끄럽고 떠들썩해야 하는데, 여긴 너무 조용해. 맥주 종류도 너무 적어.” 미국인들은 루이쌍끄에서 이렇게 불만을 터뜨렸다. 레스토랑의 성격은 주인장이 정하는 법. 이후 그는 ‘프렌치’를 붙였다. ‘프렌치’를 단 이유는 그의 요리 대부분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막내 요리사로 일하면서 배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3년 동안 레스토랑 6곳을 돌며 요리를 익혔다. 그는 유명한 요리학교를 졸업하지도, 세계적인 호텔에서 경력을 쌓지도 않았다. 스무살부터 그야말로 ‘현장’에서 구르며 실력을 닦았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의 요리 철학이다. 그가 빚은 맛은 열정이 오장육부를 달구는 맛이다. 그의 곁에는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한 여자친구 김모아(29)씨가 있다. 마치 숟가락 몇 개 놓고 살림살이를 시작한 앳된 신혼부부처럼 두 사람의 사랑은 살갑고 풋풋하다.
그의 ‘팻덕’(사진)은 장인의 수공예품 같다. 와인을 이용한 프랑스 서남부 시골 스타일의 오리다리 요리라고 한다. 껍질은 포크를 들이밀수록 바삭함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껍질 속의 살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짙은 와인색 껍질을 벗자 결이 촘촘히 줄 서 있는 오리다리 살이 인사한다. 탱탱하면서 쭉쭉 늘어지는 홍시처럼 부드럽다. 한껏 취해 몽롱해지는 찰나, 감자퓌레와 버섯볶음이 접시 위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이씨의 요리는 한 접시에 3가지만 올라가는 것이 특징. 팻덕은 24시간 오리다리를 염장한 뒤 낮은 온도의 기름에 넣고 1시간50분 정도 익힌다. 기름에 재워두었다 식탁에 낼 때 15분 정도 오븐에 굽는다. 마치 양념치킨의 소스를 바르듯 그만의 소스를 바르면서 굽는다.
“누나, 맛이 어때요?”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로 물어본다. 세상에 가장 빛나는 맛이 있다면 열정이 콕콕 박힌 음식이다. 그의 맛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귀중한 자산, 열정이 보인다. ‘루이쌍끄’ / 02-547-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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