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합.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60대 그녀의 젊음, 홍어삼합을 나누며 캐묻다
여자가 늙는다는 것은? 초콜릿 상자 안에 형형색색의 초콜릿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는 듯한 참혹함을 보는 일? 인생의 가을을 아쉬워하면서도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일?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를 겨우 빠져나와 편안해지고 단단해진 것을 느끼는 것일까! 사람마다 나이듦에 대한 감회는 다르다. 나이테가 더 늘어 오히려 편안한 이도 때때로 젊은 날의 생기가 그립다. 전통음식연구가 ㅇ선생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20대의 생기와 청춘이 살아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커다란 눈동자, 음식을 만들 때 흥얼거리는 유쾌한 목소리… 도무지 지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40대라 해도 믿을 만큼 젊다. 젊은 날 열정을 죽을 때까지 갖고 싶은 철없는 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늘 젊게 생각한다’, ‘늘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뭐 이런 고리타분한 이유를 비결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늘이 비와 번개로 화풀이를 실컷 한 다음날 ㅇ선생을 만났다. 여전한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그와 한 끼 식사 자리로 고른 곳은 여의도백화점 7층 한식당 ‘향원’이었다. 1989년 문을 연 이후 줄곧 여의도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한식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궁중정식’을 주문하자 7가지 요리가 등장했다. 삼합(사진), 갈비찜, 삼색전유어, 낙지볶음 등. 평범한 우리네 음식이지만 맛은 별스럽다. 고향이 광주인 주인 임차순(62)씨의 입맛이다. 전라도 음식 특유의 진하고 촘촘한 감칠맛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지방마다 맛이 다르다. 서울은 짜지도 맵지도 않은 것이 특징. 궁이 있어 화려하고 양은 적으나 가짓수가 많은 편. 충청도는 사람들을 닮아 수수한, 자연 그대로의 맛. 조미료로 주로 된장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충청도보다 더 소박한 맛은 강원도다. 남쪽 경상도와 전라도로 내려가면 간이 세다. 더운 날씨 탓에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할 목적이었다. 전라도는 풍부한 식재료 때문에 음식이 별날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하다. 탕 하나를 만들어도 지지고 볶고 요리기술을 최대한 발휘한 음식이 많다.
“선생님 이곳 맛 어때요?” “괜찮네요.” 삼합과 홍어무침으로 손이 자꾸 간다. 전라도 음식점에 홍어무침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문을 열 때만 해도 홍어요리가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민당 시절, 당사가 여의도백화점 6층에 있었다. 지지자들이 평소 김 전 대통령이 홍어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당사로 홍어를 몇 상자씩 보냈다고 한다. 그 많은 홍어들은 ‘향원’으로 직행했다. ‘향원’은 김 전 대통령의 홍어 보관소였다.
배가 두둑해지자 본격적으로 ㅇ선생의 젊음의 비결 조사에 착수했다. “젊었을 때 막 욕심내서 일 많이 할 때는 정신없었지요. 요리 심사, 강연, 방송… 그걸 내려놓으니 맘이 편해요.”(헉! 일을 안 해야 된다는 말씀인가!) “돈은 지금 연구하는 거 유지할 정도만 있으면 되고.”(헉! 돈도 벌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좀 모자라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육체적으로 끝내줘요. 하하.”(헉! 몸만 갈고닦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 “아침마다 현미밥과 된장국을 꼭 먹어요.”(오호라! 이것이 영양제로구나.) 겨우 1가지 비법을 건졌다. 비법이란 것이 들으면 들을수록 오묘하다.
그는 매일 1시간씩 ‘아이돌댄스’를 추고 연극 연습을 한다. 젊은 날 연극을 좋아했지만 연극배우가 될 수 없었던 친구들과 ‘오셀로’를 연습한다. 먼 곳에 사는 이가 찾아오면 집 근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리를 함께 걷는다. 그에게서 비법을 듣지 않아도 비결을 알 수 있다. 단아한 생활 속에 피자 위 치즈처럼, 해보지 않았던 쫀득한 재미있는 일을 찾고, 루꼴라처럼 향긋한 바람에 웃는 것!
(‘향원’ 02-786-0070, ‘궁중정식’ 2만원)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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