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일 감독의 디지털 불청객
이응일 감독의 디지털 불청객
IPTV로 홈시어터 시대 도래, 스마트TV는 컴퓨터 흡수 시작
IPTV로 홈시어터 시대 도래, 스마트TV는 컴퓨터 흡수 시작
비디오 대여점의 추억을 아시는가. 진열장에 빼곡히 꽂힌 투박한 브이에이치에스(VHS) 테이프, 빨간 자동차 모양의 되감는 기계. 당대를 풍미한 <젖소부인>처럼 므흣한 영화를 빌리면 말없이 검은 비닐봉지에 싸주던 ‘배려 돋는’ 사장님도 무섭게 쌓인 연체료는 절대 안 깎아주셨다. 그래서 필자는 대여점에서 우리 집까지 비디오선을 깔아 전화 한 통으로 원하는 영화를 틀어주면 좋겠다고 상상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이피 티브이(IPTV)의 등장으로 수많은 방송 채널과 영화, 드라마 등을 골라 보는 진정한 홈시어터의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등장한 스마트 티브이는 영상 콘텐츠를 재생하는 수준을 넘어 컴퓨터·스마트폰의 기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고작 10여년 만에 일어난 무서운 변화다.
지난번( 5월12일치 7면 ‘3D TV 원하면 2012년 이후에나’)에 이어 오늘은 티브이가 얼마나 더 똑똑해지고 있는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얼마나 쏙쏙 보여주고 있는가를 얘기해 보겠다.
아이피(IP·Internet Protocol) 티브이란, 방대한 동영상을 저장한 비디오 스트리밍 서버에서 원하는 타이틀을 고르면 고화질로 압축한 영상을 인터넷 회선을 통해 수신기로 받아 보는 서비스다. 올해 5월 기준 한국의 아이피 티브이 가입자 수는 370만명, 진정한 양방향 방송매체로 자리잡았다. 최근 불법 다운로드가 준 데 아이피 티브이도 한몫하고 있다.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보고 싶은 타이틀을 즉시 구매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고 떳떳한가. 이러한 접근성과 지불 방식은 특히 대중과 만날 창구가 좁은 독립영화, 작은영화에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한 든든한 발판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아이피 티브이 서비스는 대형 통신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콘텐츠와 가입자 수에서 선두였던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의 비 티브이(B TV)는 최근 케이티(KT)의 올레 티브이(Olleh TV)에 추월당했다. 올레 티브이의 강점은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와 결합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엘지 유플러스 티브이(LG U+ TV)는 가벼운 터치로 쉽게 조작하는 ‘핑거마우스’ 리모컨 등 차별화된 하드웨어로 열세를 극복하고 있다.
비디오 대여점과 집 연결하는 꿈 현실화
스마트 티브이란 이름을 단 제품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이 고작 지난해부터인 만큼, 그 정의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주된 특징 둘을 꼽자면, 하나는 티브이가 인터넷에 연결돼 각종 온라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또 하나로 컴퓨터·스마트폰처럼 운영체제(OS)가 있어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기능을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영체제는 삼성·엘지처럼 자사 고유의 프로그램을 탑재하거나, 구글 티브이처럼 공개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애플 티브이’나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웹튜브’처럼 셋톱박스 형태로 저렴하게 구입해 기존 티브이에 연결하는 제품도 있다.
삼성과 엘지는 3D 티브이와 스마트 티브이를 합친 제품을 주로 내놓고 있다. ‘앱’을 내려받는 앱스토어도 따로 운영한다. 앱은 크게 영상 기반과 문자 기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튜브·연합뉴스·구글 지도 등 영상 기반 정보를 찾아보는 건 꽤나 멋진 경험이다. 삼성 스마트 티브이의 별도 카메라로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어떤 이들에겐 쓸모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문자 기반 앱인 트위터나 간단한 웹서핑을 시도해 보자 금세 난관에 봉착했다. 단추 몇개 없는 리모컨으로 화면의 가상키보드를 더듬더듬 눌러 글자를 입력하려니 주먹 쥐고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기분이랄까…. 그나마 엘지의 매직모션 리모컨은 가리키는 방향으로 커서가 따라다녀 훨씬 편리하긴 했지만, 문자 입력이 심히 느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티브이 리모컨은 채널·볼륨 등 단순한 ‘명령’만 입력하면 됐지만, 컴퓨터를 흉내낸 스마트 티브이는 필연적으로 마우스와 키보드처럼 ‘위치값’과 ‘문자’를 입력해야 한다. 소니에서 출시한 구글 티브이는 리모컨에 키보드를 붙여봤으나 흉악할 따름이다. 아직 어떤 스마트 티브이도 이 문제를 속시원히 풀지 못한 듯하다.
핵심 콘텐츠인 애플리케이션도 아직 양과 질이 부족한지라, 하루이틀만 뒤적거리면 할 게 없을 정도다. <교육방송>(EBS) 교육용 앱 등 눈에 띄는 몇몇을 빼면 개인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휠씬 간편하게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주문형비디오(VOD) 역시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마트 티브이 구매자에게도 기존의 아이피 티브이나 케이블 방송은 여전히 필요하다. 좀 가혹하게 말하면 아직 스마트 티브이의 ‘스마트’는 마케팅적 수사의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스마트TV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뜨는 별
요약하면, ‘아이피 티브이는 무르익었고 스마트 티브이는 멀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지는 별 vs 뜨는 별’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시대의 흐름은 컨버전스(통합)이기에, 가정용 정보기기가 통합되는 정점에 필연적으로 스마트 티브이가 있을 것이다. 아이피 티브이의 셋톱박스가 표준화되어 스마트 티브이에 내장되면, 수많은 방송채널과 타이틀 또한 앱처럼 실행될 것이다.
또한 사람의 말과 손짓이 미래의 주된 입력 수단으로 자리잡으면 스마트 티브이의 입력장치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손가락을 허공에 들어 화면의 특정 부분을 가리키고 누르는 시늉을 하면 티브이에 장착된 카메라가 그 위치를 분석·실행하고, 내장된 마이크가 시청자의 음성을 주변 소음과 분리해 문자로 변환하는 것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라는 게임기의 몸짓 입력 장치인 ‘키넥트’와 스마트폰의 음성 검색 기술을 떠올려보면, 전통적인 리모컨이 아예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
한편, 소위 ‘엔(N) 스크린 서비스’라고 부르는 기기 간 통합 전략도 대중화될 것이다. 이미 삼성 스마트 티브이의 ‘올셰어’, 엘지의 ‘스마트셰어’ 기능으로 스마트폰, 컴퓨터 등에 저장한 영상을 케이블 연결 없이 간편하게 티브이로 볼 수 있다. 케이티 올레 티브이도 시청중인 콘텐츠를 스마트폰 전용 앱에서 이어 볼 수 있는 ‘올레 티브이 나우’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영화 배급 관계자는 앞으로는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 한번의 티켓 구매로 티브이,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를 포함한 다양한 기기에서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전망했다.
최근 몇년간 한국인의 여가시간은 2004년 3시간50분에서 2009년 3시간20분(평일 기준)까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야 하는 하루 3시간 남짓 나만의 소중한 시간에, 이것 봐라 저것 봐라 새 티브이 사라 권하는 것이다. 야근 좀 그만 시켜먹고서 그런 소리 해라! 여가시간이 있어야 티브이를 보든지 말든지 하지!
이응일 영화감독
김정효 기자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