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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굽는 밤, 지글지글 행복이 익어가네

등록 2011-07-14 11:44

차돌박이
차돌박이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차돌박이집 구수한 맛 나누며 뜨거운 눈길 맞추며

구수한 공기를 뚫고 눈이 마주친다. 배우 강혜정이다. 그는 고깃집 맞은편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남편 타블로와 외국인 친구들, 음악인으로 추정되는 이들도 보였다. 그는 뽀얀 연기가 레드 카펫의 팡파르처럼 보일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오래전 일이다. “안녕, 오랜만!” 교정에서 잘생긴 한 남자에게 인사한 적이 있다. “네, 네, 좀 그렇죠.” 그는 장마 끝에 비추는 햇살 같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멀리서 과 친구가 달려왔다. “너, 배우 이민우랑 아는 사이야? 나도 소개시켜줘.” 앗! 그때야 알았다. 그저 낯이 익어 같은 과 선후배이거니 생각한 것이다. 그를 정확히 알아보지 못한 점에서 나 역시 그를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때부터 ‘매우 아름다운 이’를 만나면 배우인지 지인인지 점검한다.

그날 만난 강혜정을 사람들은 가만히 두지 않았다. “사인해 주세요.” “같이 사진 찍어요.”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왜? 그는 안다. 그를 지켜주는 것은 팬들이니깐!

그날 나를 지켜주는 이들과 차돌박이를 구웠다. 선배 ㅇ, ㅊ 그리고 후배인지 친구인지 정확하지 않은 ㅇ이 곁에 있었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이들이다. 세상살이의 무거움을 핑계 삼아 천박해지는 것을 막아주고, 쓸데없는 소심함에 좌절하지 않도록 격려해준다. 별것 아닌 내 이야기에 마냥 박장대소 웃어주는 ㅇ, 보잘것없는 작은 내 성과에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자랑질해주는 ㅊ, 사소한 고민이라도 생겨 달려가면 언제나 명쾌한 해답을 주는 유쾌한 ㅇ. 내가 그들에게 주는 것은 별로 없다. 가족만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 이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이 파수꾼들과 늙어 죽을 때까지 술 마시면서 살 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 밤, 우정을 딱딱한 게껍데기만큼 단단하게 만든 것은 용산 녹사평역 부근 ‘차돌집’의 차돌박이였다.

차돌박이는 소의 양지머리에 붙은 단단하고 기름진 부위다. 그래서 ‘차돌양지’라고도 부른다. 국거리용으로 주로 쓰는 양지머리와는 다르다. 돼지고기로 치면 삼겹살이다. 700㎏ 소 한 마리를 잡으면 6㎏ 정도가 차돌박이라고 한다.

차돌박이는 왜 얇게 잘라 먹는 걸까? 등심처럼 덩어리째 구워 먹으면 질기다. 쇠고기전문유통업체 관계자는 0.2㎜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삼겹살처럼 선홍빛 강한 붉은 살과 설탕처럼 흰 지방이 경주트랙처럼 엮여 있는 것이 좋다. 차돌박이야말로 굽는 이의 빠른 손놀림이 중요한 고기다. 그날, 나의 파수꾼들을 위해 번개 같은 속도로 고기를 구웠다. 이를 꽉 깨무는 재미와 혀를 달구는 촉각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기쁜 체념을 선물하고 싶었다.

차돌집은 7년 전 문을 열었다. 고깃집이 파스타집처럼 예쁜 벽돌로 치장해서 유명하다. 몇 년 전 인근에 2호집도 열었다. 이상하게도, 2호집은 본점과 주인도 같고 같은 고기에, 인테리어도 비슷한데 ‘먹는 맛’은 같지 않다. 늘어난 식탁만큼 서비스가 못 따라가서일까? 알 수 없다. 맛집을 지켜주는 것은 손님이다. 그 집을 그 집답게 하는 이들이다. 멀리서 반짝이는 여배우와 파수꾼들, 고깃살 타는 냄새가 ‘차돌집’ 창을 치는 빗소리를 재웠다. (차돌집 본점 02-790-0789)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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