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火鍋)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미스터 모노레일’의 소설가 김중혁과 함께 맛볼 ‘훠궈’
신호등 앞에 멈춰선 승용차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차 안에는 5명의 창간 멤버가 타고 있었다. 내가 지른 한마디 때문이었다. ‘던킨도너츠’라는 말이 나왔어야 했다. 정교한 뇌의 시스템을 건너 튀어나온 단어는 희한했다. 지른 말이 뭐였냐고? ‘더큰도너츠.’ 가장 먼저 평범한 말에서 미세한 위트를 찾아낸 이가 소설가 김중혁이었다. 그가 차 안에 없었다면 웃음바다는 없었을 것이다. 2007년의 일이다.
소설가 김중혁은 당시 기자로 활동했다. 이미 그는 <펭귄뉴스> 등으로 촉망받는 소설가였다. 누구도 쫓아오기 힘든 상상력, 음악과 그림 등 각종 문화 코드에 대한 산뜻한 식견, 정확한 혀를 가진 요리기자였던 경력 등 그는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밥상처럼 다채로웠다. 에 요리면을 만들고 ‘칼의 노래’ 등 재미있는 기사를 썼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존중하고, 맛집 정보를 탐욕적으로 수집하지 않으며, 맛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별하는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
몇 주 전 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두번째 장편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당장 서점에 달려가 <미스터 모노레일>을 구입했다. 첫장부터 무릎을 탁 쳤다. 역시 김중혁이었다. 차례와 작가의 말은 구불구불하고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인 ‘모노레일’ 게임 판이었다. 그가 그린 일러스트다. 구간마다 적힌 문구도 역시 그의 것이었다. ‘승리의 트림은 디저트보다 달콤한 법이지.’ 음식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전했다. 그런 흔적은 소설 곳곳에 출몰한다. 주인공은 게임을 완성하면서 메밀국수, 즉석낙지볶음밥을 먹고 가상의 모노레일 식탁에서는 파스타, 에스카르고, 정어리 튀김을 올렸다. 게임 캐릭터 레드의 직업은 이탈리아 몬탈치노 포도나무에서 찾았다. 등장인물 고우인은 분식점 이름을 ‘지상에서 천원으로’라고 지어 독자의 웃음을 불렀다. 소설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재미있다.
그와 어디서 밥 한끼를 먹으며 축하해줄까?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는 ‘마라샹궈’라는 작은 중국집이 있다. 이곳은 중국집의 상식을 깬다. 차림표부터 그렇다. 수십가지 외우기도 힘든 중국 음식이 즐비하지 않다. 요리는 고작해야 8가지. 카페처럼 아담하고 예쁘다. 차림표 첫장의 ‘훠궈’(사진·火鍋)는 마치 온탕과 냉탕을 들락거리면서 피부를 당겼다 풀었다 하는 맛을 선물한다. 훠궈는 만주와 몽고 유목민에서 유래한 중국식 샤브샤브다. 조조의 아들 조비도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청나라 건륭제는 훠궈를 매우 좋아해서 1550개의 훠궈 솥을 걸어 나눠 먹었다고도 한다. 가장 큰 매력은 두부, 각종 채소, 양고기나 쇠고기 등을 두가지 버전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훠궈는 홍탕과 백탕이 함께 붙어 있다.(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홍탕은 10여가지 약재와 말 그대로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 등을 써 맵다. 백탕은 닭고기, 돼지 뼈, 오리고기 등으로 우려 담백하다.
이곳 홍탕은 일품이다. 그냥 매운맛이 아니다. 진하게 졸인 간장의 은근한 풍미를 온몸에 전달받는 것처럼 ‘징하게’ 맵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피부에는 땀이 방울방울 맺힌다. 문득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것은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는 동안 느낀 감정과 비슷하다. 고통이 지구의 밑바닥까지 이어진 것처럼 절망이 침공할 때도 소설은 고상 떨지 않는 낙관과 경쾌한 웃음, 무겁지 않은 진지함을 선사하며 희망을 말한다. 곧 그에게 전화해 약속을 잡으리라! (‘마라샹궈’ 02-723-8653)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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