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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시절 실수담에 세부의 밤 익어갈 때

등록 2011-10-06 15:17수정 2011-10-14 17:44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외모 반전, 말실수 달인 여기자 ㅈ의 강추 맛집은…‘소년상회’
이야기 하나. 장소는 여자고등학교 교실. 수업이 중반을 달려갈 때쯤 ㅈ은 목이 너무 아팠다.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그는 손을 번쩍 들었다. 다른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아픈 동작을 반복하면서 외쳤다. “선생님 성기가 아파요!” 헉! 말이 잘못 나왔다. ‘성대’가 ‘성기’로 둔갑했다. 선생님 얼굴은 빨개졌고 교실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이야기 둘. 장소는 거실. ㅈ은 오빠와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복잡한 수학공식에 대해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리즘이란 말이야….” 오빠는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ㅈ도 나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오빠 오르가즘이란 말이야!” 헉, 또 잘못된 단어가 튀어나왔다. ‘알고리즘’이 ‘오르가즘’으로 탈바꿈했다. ㅈ은 머쓱해지고, 그의 오빠는 말문이 막혔다.

필리핀 세부 올랑고섬에서 ㅈ의 엉뚱한 실수담을 들었다. ㅈ은 올랑고섬 출장길에서 만났다. 한 여성지 기자인 ㅈ은 취재를 위해 우리 일행에 합류했다. 그의 외모는 최고의 반전이었다. ㅈ은 말실수라고는 할 것 같지 않는 ‘철저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마른 체형, 똑 부러진 말투, 지적인 얼굴 등….

피부가 잘 구운 감자껍질처럼 벗겨진다고 해도 놓칠 수 없는 세부의 바닷바람, 경쾌한 리듬에 맞춰 모래를 밀어내는 짙푸른 파도 등은 낯설었던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필리핀 바다 음식도 한몫을 했다.

참치, 조개 등을 넣고 끓인 생선국은 바닷물을 육수로 쓴 것처럼 독특한 짠맛을 냈다.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생선은 팔뚝만했다. 직선으로 쭉 뻗은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헤집을 때마다 흰색 살점은 산산이 부서져 입으로 왔다. 필리핀 감자칩은 기름종이만큼이나 얇아 우리네 인생처럼 자칫 잘못 한눈팔다간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져버린다. 필리핀 음식(사진)은 생강이 많이 들어간다. 둥포러우(동파육)처럼 두툼하게 간을 한 돼지고기 요리는 식탁에 빠지지 않는다.

웅웅, 바스락바스락, 밤의 소리가 깊어질 때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건대 앞 특이한 포장마차 알아요?” 그가 툭 던진다. ‘소년상회’ 이야기다. 소년상회는 지하철 2·7호선 건대입구역 광진문화예술회관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 이름이다.

비행기로 4시간이 넘는 세부에서 해풍 같은 여인네들이 주제로 삼을 만큼 소년상회는 독특한 곳이다. 치킨올리오, 커리올리오 등의 파스타와 서양 음식 때문이다. 허름한 포장마차와 뜻밖에 잘 어울린다. 유명 레스토랑의 파스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푸드스타일링도 특징이다. 주인장 채낙영(27) 셰프는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짧은 현장 경험을 쌓은 뒤 지난해 4월19일 소년상회를 열었다. <쿠캔> 등 요리 전문지에 소개가 되고 조금씩 입소문도 났다. 최근에는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9에 포장마차가 통째로 출연하기도 했다.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채씨는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파스타 포장마차를 열었다. 파스타를 뺀 메인 요리는 매달 바뀌고 담백한 오일과 쫄깃한 닭고기로 만든 치킨올리오는 이곳의 최고 인기 메뉴다. 채씨의 꿈은 자신의 레스토랑을 언젠가 여는 것! ㅈ은 “파스타가 꽤 맛있다고 해요. 꼭 한번 가보세요.” 말실수의 달인 ㅈ이 추천했다. 잔잔한 대화는 박장대소 실수담과 함께 맛있게, 신선하게 익어갔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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