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주말 어쩔 거야
어렸을 때 ‘집짓기 놀이’를 좋아했다. ‘레고’처럼 끼워 맞추는 블록이었는데 지금의 레고보다는 말랑말랑한 재질의 길쭉한 플라스틱 블록이었다. 지난해 말 아이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로 유아용 대형 레고 세트를 샀다. 엄마가 좋아하던 놀이를 아이도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모자가 오붓하게 블록을 쌓는 흐뭇한 풍경을 떠올리면서 나름 거금을 지갑에서 꺼냈다. 그러나 환상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그렇듯 아이는 포장도 다 벗기지 않은 채 블록 상자를 내던져버렸다.
이후 거실 한구석에 처박힌 레고 상자는 내 차지가 됐다. 아깝기도 하고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손장난 삼아 블록들을 끼우다 보니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알록달록한 색깔들을 쌓다 보면 도무지 아귀가 들어맞는 일을 찾기 힘든 복잡한 ‘속세’의 시름도 풀리는 것 같다. 물론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훼방꾼이 나타나 부숴버리는 통에 나의 ‘동물원’ 프로젝트는 늘 기반공사에 머물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 한번도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동물원을 제대로 완성해볼 생각이다. 근사한 동물원 입구도 만들고 코끼리와 기린에게 멋진 둥지를 지어주고 곰 가족과 얼룩말들에게는 물고기와 홍당무 먹이도 넣어줘야지. 그러니 훼방꾼아, 이번 주말에는 방해 말고 두시간만 낮잠을 푹 자주렴~.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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