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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집 많이 안 다녀봤죠?”

등록 2012-03-28 17:03

한동원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한동원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신점편 ④ 점보기(上)
자, 드디어 ○보살과의 본격 대면이다. 무릇 씨름은 샅바싸움이요 권투는 눈싸움이라, 점술에 있어서도 초반 기싸움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데, 필자가 뭔가 불신지옥스러운 불경스러움을 은근 발산하고 있었던지 ○보살은 내내 필자에게 전신투시 검색대스러운 시선을 고정시켰던바, 그 눈길 받으며 방석으로 향하는 기분은 흡사 남삼각 한 장 걸친 채 홀로 광화문 사거리를 횡단하는 기분이었다.

착석과 동시에 마주친 ○보살의 눈은 그러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하였는데, 그녀는 이제껏 필자가 봐온 인물들 중에서 가장 ‘그려진 듯한’ 눈동자의 소유자였다. 여기에서 ‘그려진’이라 함은 물론 초신성/구상성단/백색왜성/적색거성 난무하는 베르사유의 장미스러운 그런 눈을 지칭함이 아니오라, 백지에 먹물 찍은 듯한 눈동자, 말하자면 탱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평면적인 눈동자를 말함이니, 그녀에 대한 ‘훅 끼쳐지는 신기’라는 평가의 진원지는 어쩌면 혹 이 대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보살에 대한 평가에는 그녀 특유의 고대설화스러운 이목구비라는 점술외적 요소가 개입되어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불신지옥스러운 역심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보살은 즉각 기습적인 2단계 기선제압에 돌입했으니 그 대사는 이것이었다. “점집 많이 안 다녀봤죠?” 잠깐. 독자 여러분. 잠시 그 감탄 미뤄주시라. 이 통찰은 염력이나 신통력이 아닌 점집 초보인 필자의 무식스런 행동거지에 근거하여 득한 것이었으니, ○보살의 지적 포인트는 다음 두 가지였다. ① 방석을 발끝으로 끌어다 앉지 마라. 점집에선 발 쓰는 거 아니다. 그리고 ② 어디 감히 불단에 팔꿈치를 얹어. 큰일 나려고!

앞 손님이 방석 정리를 전혀 안 해놓고 나갔길래… 등의 항변과, 불단이 침실(아니, 법당)의 정면이 아닌 우측에 있는 바람에 거기가 불단인 줄도 몰랐다는 변명 따위는 씨알도 안 먹힐 그 추상과도 같은 불호령에, 평소 이슬로만 연명하는 필자는 다시 한번 기선제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도 전에 야단부터 맞고 들어간 필자를 다독이듯 이제껏 짚고 있던 짝다리를 풀고 다소곳이 정좌를 한 ○보살. 그와 함께 “이름하고 생년월일시?”라는 업계 표준 질문으로 마침내 본격 점술 시술이 시작되었는데, 그런데 잠깐. 이름하고 생년월일시? 사주점이라면 또 몰라도, 무릇 신점이라 함은 심지어 피점술자와의 대면은커녕 예약전화를 걸어오기도 전에 그(녀)의 모든 것을 파악해버리는(그러리라 기대되는) 신령님/장군님/대왕님/선녀님 의존적 점술장르가 아닌가. 그런데 성명하고 생년월일시? 라니.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이 땅 모든 기선제압의 근본이자 종결점인 반말 구사를 위한 주민등록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조치였다는 설명 외에는 가능치 않을 것인바, 이미 잡은 기선의 최종 제압에 있어서도 확실한 개연성을 확보하고 들어가는 그녀의 치밀함 및 노련함에 필자는 그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윗연배인 것 같으니 말 놓을게? 괜찮죠?”라는 일방적 통보와 함께 본격 반말체로 읊어지기 시작한 필자의 과거에 대한 운명철학적 코멘트들. 필시 독자 여러분께서 가장 궁금해하고 계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당 칼럼이 점지받은 지면 사정상 부득이하게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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