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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맞아도 너~무 안 맞네

등록 2013-04-10 18:04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관상집편 ④
“관상에서도 생년월일시가 필요한가요?”라는 필자의 우매찬연한 질문으로 촉발된 ×선생의 분노의 장광설을, 저려오는 다리 주물러가며 참아내던 숙달된 조교 ○씨. 그녀는 결국 다음 한마디로써 선생께 점술자로서의 본분 회복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근데 저희 관상은 언제…?”

비록 낭랑한 음성과 화사한 미소 동반하였더라도 블로킹은 어디까지나 블로킹인 것. 썰의 가도를 고속질주하던 선생이 받은 충격량은 다음 반응만으로도 충분히 계측 가능하리. “여자가 어째 이리 정숙지가 못해!”

아아아. 선생의 제2차 질풍노도는 이렇게 시작되었으니 ‘나- 이런-’, ‘제-길’, ‘말 끊지 말고!’, ‘내가 80을 다 먹은 노인네인데-’ 등 새로운 조흥구가 가미되며 이어지던 ‘여자는 달, 남자는 해’, ‘여자의 생명은 정숙함’, ‘결혼의 목적은 종족보존’ 등등의 결혼적령기 처자와 함께 듣기에 상당히 부담스럽던 선생의 장광설로 인하여, 답사는 미증유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었더랬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폭우나 교통체증은 없듯, 영원한 분노 역시 없는 법. 커피음용과 줄흡연, 그리고 간헐적인 책상치기 등으로 탱천한 분기를 서서히 누그러뜨리던 선생은 마침내 점술에 착수하기에 이른다.

도합 110년 경력을 과시하듯 장구하던 선생의 멘트를 이 섬세한 지면에 모두 적을 수는 없겠고, 그가 사인펜을 붓 삼아 일필휘지 적은 핵심만을 옮겨보자. ①일기위공(一技爲功):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고 ②녹봉위가(祿俸爲佳): 그 일로 월급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③토형토비(土形土鼻): 코가 토(土)자 모양을 하고 있으니 ④전택위록(田宅爲綠): 부동산 쪽에 재주가 있다. 그러니 그쪽으로 집중 파고들면 ⑤가치요산(可致饒産): 넉넉한 재산을 모을 수 있다.

평소 천기누설/입방정/개인정보유출을 경계하는 필자가 점술 결과를 이리 상세히 공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렇다, 전혀 안 맞기 때문이다. 우선 ①번. 선생의 ‘기술직’이라 함은 학자와 관직 이외의 전 직종을 일컬음인데, 이건 뭐, 그야말로 필자의 행색만으로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는 사안이겠고, ②번이 가장 결정적인데, 필자가 다달이 급여 수령하는 생활을 청산한 지는 어언 10년이 넘는데다가, 그러한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계획 또한 전혀 없음에도 ×선생은 “왜, 직장 다니기 싫어? 싫음 때려치워. 하지만 계속 다니는 게 좋아! 관상에 다 나와 있어!”라고 못을 박기까지 했으며, ③은 뭐, 그 말씀 들으니 왠지 자꾸 그래 보이기는 하더라만,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사람 중 코 모양이 흙 토 자 아닌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으며(최소한 선비 사 자는 아닐 거 아냐), 게다가 ④번, 필자의 부동산 방면에 대한 재능은, 재능은커녕 이제껏 서너 차례 임대차계약 체결해 본 경험이 전부이고, ⑤ 앞일이야 알 수 없다 하니 ⑤번 항목은 제외시키더라도, ×선생의 적중률은 극히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랬다 치고, 그렇담 필자의 최종병기인 숙달된 조교 ○씨에 대한 점술 결과는 어땠을까.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HahnD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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