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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산봉우리가 만든 지평선

등록 2012-04-25 17:02

백상현 제공
백상현 제공
[매거진 esc] 유럽 소도시 여행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의 푸른 심장, 장크트길겐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서 한가롭게 산길을 걷고 호숫가를 산책하며 분주한 마음에 잠시나마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잘츠카머구트 지역이다. 잘츠카머구트에는 수많은 가파른 고봉들과 크고 작은 호수, 그림 같은 계곡들, 부드러운 언덕들, 그리고 그 천혜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을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할슈타트이지만 오늘 우리의 여정이 향할 곳은 잘츠부르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볼프강 호수 마을 ‘장크트길겐’(사진)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마을 앞으로 새하얀 돛대를 단 요트들이 작은 새처럼 내려앉은 볼프강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옥빛 볼프강 호수를 감싸안고 가파른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땅과 하늘의 경계를 나누듯 노랑, 빨강 케이블카가 산 정상을 분주히 오르내리고 있다. 3500여명의 주민들보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언제나 더 많다는 장크트길겐에는 모차르트의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태어난 집이 있다. 모차르트의 누나인 나넬도 결혼 후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여행길에 갑작스레 찾아드는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자일반(케이블카) 승강장에 붙어 있는 소박한 셀프 레스토랑에 들러서 몇 개의 기다란 노천 테이블 중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메뉴판을 보니 저렴한 가격의 슈니첼 제멜이 눈에 띈다. 슈니첼 제멜은 제멜이라는 작은 빵 사이에, 단지 슈니첼(달걀·빵가루 등을 입혀 튀긴 고기)만을 끼운 오스트리아식 햄버거이다. 채소가 없어서 먹기에 조금 팍팍하지만 간편하면서도 든든하게 속을 채우기에 딱 좋은 음식이다.

장크트길겐 마을 뒤쪽에 위치한 해발 고도 1522m의 츠뵐퍼호른은 사계절 내내 하이킹족과 스키어들, 그리고 패러글라이더들에게 인기가 최고인 곳이다. 이미 길겐의 푸른 하늘에는 새들보다 더 높이 날고 있는 패러글라이더들의 비행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른 그곳에 올라보고픈 마음에 자일반을 타보기로 했다. 나를 태운 자일반은 15분 정도 계속 산 정상을 향해 부드럽게 상승했다. 점점 인간 세상이 멀어지고 호수는 작아졌지만 그 색채는 더욱 짙어졌다. 세상을 멀리할수록 아름다운 자연이 가까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나는 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려고만 하는 걸까.

츠뵐퍼호른 정상에 서자 잘츠카머구트는 오로지 파랑과 초록색을 사용해서 세상에서 가장 큰 캔버스에 그린 대자연의 그림이 되어 발아래 펼쳐진다. ‘12개의 산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그 츠뵐퍼호른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뿔처럼 우뚝 솟은 수많은 고봉들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패러글라이더처럼 내 마음도 그 바람에 실려 잘츠카머구트의 하늘을 마음껏 떠돌았다.

들꽃들이 피어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시간에 쫓김 없이 즐기는 산책은 말 그대로 마음 가득 평온을 안겨준다. 눈부신 초록의 자연과 맑은 호수, 그리고 평온한 삶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잘츠카머구트의 푸른 심장, 장크트길겐이다.

백상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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