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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가 아니므니다

등록 2012-09-12 23:22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⑨ 미래예측 (하)
지난 회, 우리는 ○소장이 단기미래예측에서 보인 제구력 난조의 이유를 딴 사람도 아닌 ○소장 본인이 직접 밝혔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것은 필자와의 대화 중 나온 다음과 같은 발언을 통해서였다.

“많이 오해들을 하시는데, 저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 일의 목표는 역학을 통해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소양이나 명분 또는 사명을 올바로 알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소장은 ‘부지명 무위군자'(不知命 無爲君子)라는 논어 글귀까지 인용하였으되 이러한 엘레강스한 분야는 당 칼럼의 관할이 아니라는 건 다들 잘 아시는 사안일 테고, 아무튼 ○소장의 요점은 본인의 본분은 미래를 맞히거나 단답형 의사결정을 내려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타고난 기질과 성향을 근거로 그 사람이 현시대에서 찾아나가야 할 길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소장이 단기미래예측에 능한 ‘점쟁이’였다면 애초에 필자 같은 불온의심분자를 고객으로 받기나 했겠는가. 그리고 뭐, 실제로도 필자가 단기미래예측형 질문을 굳이 던지기 전 ○소장이 들려준 얘기들은 그가 말한 ‘조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이를 단순히 자아도취성 자기선전이라 폄하할 수만은 없겠다.

그런데 이 대목에 이르러 우리는 얼마 전의 질문과 다시 마주친다. 이 세상에는 ‘타고난 명분’이라는 운명철학적 4차선 국도 같은 게 존재해서 우리의 인생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매일 내리는 의사결정들이란 결국 차선 변경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이 질문은 ○소장의 미래예측이 아니라 과거예측에서의 정확도 덕분에 유효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소장은 ‘낙천지명’(樂天知命)이라는 주역 글귀를 또다시 인용하며 “내게 주어진 천명이라면 그것이 내게 좋은 것이든 아니든, 심지어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웃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천명’이라는 대전제를 단언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런 걸까?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삶에서는 분명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의지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일, 그리고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일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다. 어떤 길 위에서건 움직이지 않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의지다. 그것이 찾아나간 길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지독한 정체에 갇힐지도 모른다. 사고를 만날지도 모른다. 지독한 비를 만날 수도 있고, 폭설을 만날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화를 내고 불평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면 느긋하게 계속 자신의 길을 간다. 저 멀리, 얼핏 잘 뚫리는 것 같아 보이는 다른 도로가 있더라도 한눈팔지 않으면서. 종종 속도를 늦추고, 때론 멈춰 서게 될지라도.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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