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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라는 남자

등록 2013-01-09 18:53

[매거진 esc] 임경선의 남자들
대통령 선거 결과로 세간에 화제가 된 ‘오십대 남자’ 중 요새 유일하게 나의 관심을 끄는 남자는 고종석 선생님이다. 화제가 된 오십대 남자의 전형성과는 조금 먼 거리에 있지만.

얼마 전 절필을 선언한 그가 당대에 가장 지적이고 섬세한 미문을 쓰는 문필가임은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글을 읽을 때 즐겁다는 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남자 작가가 그였다는 점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괜찮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세간의 고급스러운 남자들은 어김없이 그를 읽었(다고 말했)고 그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마치 ‘고종석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유연하면서도 세련된 취향의 인증서와도 같았다.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겉과 속을 잘 분별해서 사용해야 하는 그 고급 남자들로서는 그의 자유인의 면모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법도 했다.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한 가지를 가진 상대를 탐하기 마련.

그랬던 그가 지금은 무대를 지면이 아닌 트위터로 옮겨 ‘쉬운 남자’가 되었다. 대개의 작가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고고하고 달달하게 관리하는 것과 달리 그는 모든 변덕스러운 희로애락과 편파적인 감정을 골룸처럼 그르렁 쏟아낸다. 그러고는 자신을 계급적으로 격리시키는 일 없이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반응을 한다. 때로는 거칠고 신경질적으로, 개인 대 개인으로 상대를 ‘인간 취급’ 하는데 그럴수록 혹자에겐 그는 더 쉬워 보일 뿐이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글쟁이를 제멋대로 소비하는 방식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흥미롭지만 어떻게 소비당할지 장담할 수 없는 게 그 업이 가진 고약한 특성이니 불평할 수만은 없다.

그가 나에게 와닿는, 아니 나를 꽤 미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안하지만, 그가 늘 ‘혼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남자들이 떼 지어 다니는 것을 몹시 싫어해왔다. 특히나 ‘불량’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우정과 신의, 의리, 단결 등의 ‘건전한’ 개념을 입에 담는 남자들이 못내 유치하고 가소로웠는데 그런 남자들은 마지막엔 반드시 혼자가 되면 약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야수가 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이고, 상처받더라도 혼자 상처받기를 바랐다. 건전하고 안전한 불량들보다는 차라리 결기있게 고독한 우등생이 좋았다. 고종석이라는 남자는 예민하게 상처받을 것을 다 받는 것을 넘어 그 저변에는 늘 어딘가 불손해 보이는 자신감이 슬쩍슬쩍 엿보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연륜의 문제가 아니라, 비관을 바탕에 둔 낙관의 태도였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타고난 것 같았다.

무엇을 겹겹이 쌓는지도 모르고 몸집을 위로 옆으로 그저 부풀리며 ‘성장’하는 남자가 있는 반면, 어떤 남자들은 피 흘리고 까져서 새살을 드러내며 제자리에서 ‘재생’을 한다. 그렇게 시큰하도록 선명하고 투명해져만 간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 고급 남자들이 결코 못하는 그 한 가지이기도 하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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