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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하나하나가 ‘생존도구’라네

등록 2013-08-07 18:52수정 2013-08-08 10:17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물건, 자전거. 빠르고 조용하고 유지보수 간편하고 인력으로 움직이는데도 많은 짐을 싣고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갈 뿐만 아니라 유사시 들고 달아날 수 있는 유일한 이동수단, 가장 권할 만한 생존 탈것이다. 법과 질서가 사라져 폭력이 지배하는 막장 세상까지 상상해 보더라도, 귀한 연료 등 남이 노릴 만한 가치가 따로 없어 집중당하지 않고 무소음이라 기도비닉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 약탈자와 마주칠 확률이 매우 낮다. 스스로 약탈자가 되기에도 유리한 조건.

자전거는 부품이 날것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작동 원리 또한 단순해 누구나 손쉽게 고쳐 쓸 수 있고 간단히 해체할 수도 있다. 고도로 발달된 첨단 재료공학의 집적체인 자전거 부품들은 매우 유용한 생존 재료. 바퀴살 스포크는 탄성과 강도가 높은 스테인리스 또는 티타늄으로 만든 철사, 덫의 방아쇠나 통발 등 정밀한 물건 만들기 좋다. 강철선 꼬아 만든 케이블은 연결된 체결 장치로 탄력 있는 물체에 고정하면 대형 동물 사냥용 석궁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합성섬유 파워코즈 케이블은 전설적 고강력 섬유 케블라보다도 두배 이상 강하다. 사선으로 촘촘히 엮은 고밀도 나일론 위에 단단한 고무를 덧씌운 타이어도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 그 유명한 호찌민 샌들을 폐타이어로 만들었듯 인체 그리고 중요품의 표면을 보호하기에 타이어만한 게 없다. 그리고 튜브, 유도선수들이 도복깃 당겨 업어치고 메치기 훈련에 쓸 정도로 적당한 탄성의 고무라 막대 끝에 칼 이어 붙여 창 만들 때 등 물건을 고정하기에 좋고, 방수성에다 변형이 자유로우니 휴대하기 편한 물주머니로 쓸 수도 있다. 뒷바퀴 역회전을 막는 프리휠 래칫 기어는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끌어올리는 도르래로 쓰면 편리하고, 휴대용 펌프를 개조하면 정수기를 겸한 물 펌프를 만들 수 있다. 기어비 높여 크랭크 돌리면 바퀴축에 고정한 나무막대 회전 마찰열로 불을 피울 수도 있다. 게다가 자전거는 매우 훌륭한 무기, 급하면 통째 들고 휘두르거나 냅다 집어던져도 되고 바리케이드 삼아 공격을 막을 수 있다. 체인은 전통적 깡패 아이템, 프레임을 깨면 날카로운 창으로 쓸 수 있고, 바퀴 휠셋을 팔뚝에 고정하면 방패, 시트 포스트는 안장 붙은 채로 곤봉처럼 휘두르고, 핸들 바는 막 쓰기 편하라고 고무 손잡이까지 달려 있다. 무시무시한 완전무장 풀 세트가 흔한 자전거로 위장하고 있는 셈. 마치 맷돌 돌리는 손잡이로 위장한 최강의 근접전 무기 톤파처럼.

일부러라도 챙겨야 할 것들인데 한데 모으면 훌륭한 탈것이기도 하니, 자전거 없는 생존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 아닌가. 살아서 밭 갈고 죽어서 고기와 가죽과 뼈를 남기는 소처럼, 도구는 본디 쓸모뿐 아니라 조각조각 해체하면 또다른 쓸모를 찾을 수 있다. 상황 타개에 필요한 도구를 미리 마련해 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세상만사 어디 뜻대로 풀리던가. 재난은 99% 확률로 미처 준비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닥치게 마련이니 도구의 대체품을 애써 찾아야 하고 그때 절실한 것이 각종 재료에 대한 이해. 생존 훈련이란 도구의 쓸모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응용이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zeensa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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