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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대작전, 죽음 앞 꿀맛

등록 2014-09-17 23:02수정 2014-09-18 15:37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연재 시작할 때, 사실 반쯤은 농담이었다. 자, 이 거친 사내의 서바이벌을 보라. 다 큰 어른이 어떤 비주류 분야의 오타쿠를 자처하며 나대면 그 몰입 대상이 너무너무 좋아서 진정 빠져든 경우도 있지만 어째 좀 유치해 보이는 취미 통해 스스로 희화화하고 자조함으로써 “뭐? 그딴 걸 왜?” 남들의 관심 끌어 보려는 소위 자학 개그인 경우도 있다. 뭐 그런 두 마음 반반쯤 섞인 어중간한 동기로 가볍게 시작했던 일인데 1년 남짓 지나는 동안에 아뿔싸! 진짜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전전긍긍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네. 세상천지 너른 줄 모르고 천방지축 까불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이제 그만해. 더이상 명랑만화가 아니라구. 잔혹극이지” 말하는 듯, 뭐 그런 싸늘한 느낌.

단언컨대, 안전이 최우선이다. 다른 어떤 가치도 감히 목숨에 비할 수 없다. 뭐로 바꾼다 한들 무조건 밑지는 장사다. 그런데도 그 당연한 부등식을 무시하자고 우기는 자들이 많다. 생명을 돈 밑에 깔자 한다. 못됐다. 배가 가라앉고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데도 죄 많은 자들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경제를 살려야 할 판에 왜들 호들갑이냐! 골든타임 놓치면 경제고 뭐고 다 죽는다!” 적반하장 호통만 쳐대니 참말로 어처구니가 없어, 세상 참 무섭구나, 질린다. 탐욕이다.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계속 위험하든 말든 일단 달리고 보자는 선동, 사람값이 워낙 싸니 막 쓰고 대신 그만큼 돈으로 남기자는 후진국적 리스크 테이킹 악습이다. 그래, 위험을 관리 통제함으로써 안전을 꾀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 공정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사고 터지지 않으면 그냥 생짜로 날리는 돈 같으니 왠지 좀 아깝기도 하다. 그러나 딱 그만큼이 목숨의 값이고 그 돈 아까워하지 않는 나라야말로 그 잘났다는 선진국이다.

목숨보다 돈이 귀해? 이 해괴한 가치 당착을 가리켜 석가모니는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길 가던 나그네가 호랑이를 만나 달아나다가 바닷가 백 길 낭떠러지에 이른다. 절벽 끝 소나무 가지에 엮인 넝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아차, 넝쿨 길이가 짧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바다를 내려다보니 용 세 마리가 입 벌리고 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근데 어디선가 사각거리는 소리 들려 보니 쥐 두 마리가 그렇잖아도 너무 가늘고 약해 불안한 넝쿨을 번갈아 갉고 있네. 쥐 쫓으려 넝쿨 흔드니 소나무에 달린 벌집에서 꿀 한 방울 떨어져 나그네 손등 위에 떨어진다. 나그네는 달콤한 꿀맛에 취해 그만 넋을 잃고 꿀 더 떨어지라고 까짓 넝쿨 따위 끊어지든 말든 마구 흔든다. 호랑이는 불시에 닥치는 사고, 용 세 마리는 욕심과 감정과 무지, 낮과 밤의 상징 쥐 두 마리는 시간에 따른 노화, 넝쿨은 생명, 꿀은 지금 당장의 이득과 눈앞의 쾌락을 뜻한다. 자기 목숨 걸린 줄도 모르고, 아니 그렇다는 걸 알긴 알지만 어쨌든 꿀은 또 빨고 싶어. 꿀 좋아 꿀. 오호통재라, 이 우매함을 대체 어쩔꼬.

연재 마치려니, 이 살벌하게 위험한 사회 향해 미처 못한 말 많아 아쉬움도 없진 않지만, 내가 살아 보니 이러이러하더라 그러니 다시 산다면 저러저러해야지 한숨 쉬는 노인의 회한처럼 부질없으니 그저,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끝>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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